최훈 < 한진교통물류연구원장 >

이 땅에 처음으로 철마의 기적이 울린 것은 나라의 운세가 한참 기운
1899년9월18일의 일이다.

18일이 노량진~인천간의 33km 경인선 철길이 개통된 날로서 아흔 아홉돌이
되는 셈이다.

산업혁명의 물고를 튼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가 세계 처음으로 영국철도의
시작을 가져다 준 뒤 75년만에, 그리고 메이지유신에 의해 도입된 일본철도
보다 27년 늦게 이 땅에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경인철도는 당시의 주미공사이던 이하영의 주청에 의해 미국인 모어스
(J.R.Morse)가 황실로부터 철도부설권을 얻어내 1897년3월29일 인천 우각현
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1901년 1월에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이듬해 1906년 4월에 경의선이 영업을
개시함으로써 남북관통선이 완성되고 1913년 5월 대전~목포간의 호남선이,
그리고 8월에 용산~원산간의 경원선이 준공돼 반도의 동북 및 서남부를 연계
하는 간선이 이뤄진 것이다.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에 걸쳐 철도는 강원 영동의 깊은 골짜기를 뚫어나가
면서 검은 석탄을 주야로 실어 날러 비로소 자력에 의한 영광을 누리게됐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와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야박한 인심은 그만 철도를
떠나 도로로 쏠리게 되고 어처구니 없게도 골칫거리의 사양산업으로 푸대접을
받아 철도차량은 녹슬어갔다.

철도에 대한 사려없는 정책 입안자의 단견과 도로만능의 편견에 젖은 이른바
교통전문가들에 의해 한국철도는 저만치 멀리서 정체와 퇴행의 불운에 처하게
됐다.

프랑스의 TGV는 시속 3백~3백50km의 자국 철도망 확장과 더불어 영불해협,
파리, 브뤼셀, 쾰른, 암스테르담을 잇는 PBKA프로젝트를 오는 세기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이 기회에 우리는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고 우리나라 교통 물류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고속철도의 도입을 서둘러온 과정을 이해해야할 것같다.

이미 80년대 초 당시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처음으로 경제 산업의
신장과 물동량의 증대에 대비해 새로운 철도의 건설을 건의한 바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고속철도의 건설은 정치논리와 지역 이기주의에
휘말려 갈피를 잃고 일부 구간의 공사부실이 말미가 되어 마치 비리의 온상
처럼 여론에 각인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우리는 산적한 철도경영의 현실적 문제도 직시해야한다.

경영주체가 정부조직에 의한 관조직으로서 보수체계와 신분조직의 경직성,
구성원 임면과 노동조건의 비유연성 등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기업의 생태를
닮아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시장수요 및 가격의 탄력성을 추구하는 일도 쉬운일이 아니다.

시장의 여건과 고객의 창출을 위해 운임의 탄력적 운용이 때로는 상위정책
으로서 물가정책에 연동되어 경영의 자율성이 상실되고 이로서 기업본래의
목표추구가 사실상 어려운 사정이다.

또 다양한 수요자의 욕구에 부응키위해서는 수송수단간의 결합, 물류시설
과의 조합 등으로 최적비용에 의한 양질의 제품이 제공돼야 한다.

그러나 철도는 현실적으로 기존의 법률체계, 조직과 구성원 신분의 특성 등
구조적 여건으로 인해 경영성과는 애쓴 보람도 없이 해마다 빚을 지게 되고
적자의 골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나라전체가 구조조정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철도도 과감한 아웃소싱을 도모하여 거대한 몸집을 줄이고 민간기법의
수용을 위한 체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99주년 철도의 날을 맞아 새로운 철도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