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기관사는 병들 틈도 없다.

24시간 타이트하게 짜진 시간표에 따라 열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주말과 여름휴가는 "고객"의 몫일 뿐이다.

이 때문에 기관사에게선 출발선상에서 대기,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서 기관사는 주행거래 자체를 "훈장"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철도이력이 가감없이 나타나기 때문.

철도청 대전기관차사무소 소속의 강신기(51) 기관사.

그는 1백만km 무사고 기록을 갖고 있는 베테랑이다.

1백만km는 지구 25바퀴, 서울~부산간을 1천1백번 왕복한 거리를 의미한다.

그는 오는 11월20일이면 철도 인생 30년이 된다.

대전공고를 졸업한뒤 21세 되던 해에 철도에 입문한뒤 어언 30년.

그는 겹경사의 주인공으로 예약돼 있다.

18일 제99회 철도의 날에 홍조근정훈장을 받게 되는 것.

강 기관사가 철도와 인연을 맺은 건 멋드러진 기적소리를 내며 달리는
열차의 모습이 좋아서다.

그러나 막상 유년시절의 보라빛 꿈이 현실에 그대로 나타난건 아니었다.

통상 기관사가 되기전까지 10년간 기관조사 생활을 했다.

그도 이 기간중 석탄열차의 화로에 석탄을 퍼담는 일을 하며 땀도 무던히
흘렸다.

기관사의 업무특성상 식사때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젊었을땐 그 또한 고통이었다.

1백km로 달리는 열차의 제동거리는 1km 정도.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휘파람을 불며 차창가로 스치는 경치를 감상하는 건 영화속에서나 가능한
일.

그러나 어디쯤엔 고개가 있고, 또 어디쯤엔 다리가 있는지는 눈을 감고도
훤히 알고 있다.

조금 보태면 경부선주변 어느 지역에 배추가 자라고, 어디쯤엔 무가 얼마쯤
자라고 있는 것까지 꿰고 있다는 것.

그는 기관사인생 30년을 맞는 올해 두가지 점 때문에 웃고 울었다고 한다.

그를 기쁘게 한건 철도청이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기관사실명제".

"누구누구 기관사입니다.

저의 경력은 이렇습니다.

잘 모시겠습니다"

강 기관사는 열차내 이런 방송멘트가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게 하지만 마음
한켠에 큰 자부심을 갖게 한다고 털어놓는다.

철도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그러나 IMF경제난이 철로위에 그대로 노정되는 모습이 못내 서글프다고.

그는 운행중 맞은 편에서 오는 화물열차의 텅빈 칸을 볼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것.

넘치게 화물을 싣고 부산항을 향해야 할 열차가 맥없이 철로를 따라 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얘기다.

가는 곳마다 동료들이 우르르 따가간다고 해서 "우간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강 기관사.

"정년때까지 안전운행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첫눈 내릴때 느끼는 상큼한 기분처럼 수출용 화물을 가득 실은 열차의
모습을 하루속히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의 바람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 대전=남궁덕 기자 nkd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