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에 첫 기적소리가 울린지 올해로 99년.

한국철도는 지난 1899년 궁내부 내장원에 서북철도국이 설치돼 경인선
노량진~제물포간 33.2km가 개통된 이래 내년이면 대망의 1백주년을 맞는다.

한국철도는 한세기라는 긴 세월동안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우리 국민들과
애환을 같이 해오며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초창기 우리 철도는 4대의 증기기관차와 객차 6량, 화차 28량, 그리고
1백19명의 역무원이 전부였다.

그러나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하면서 한반도를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철도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경부선과 경의선이 잇달아 개통됐고 불과 7년만인 1906년에는
1천27km나 뻗어나가며 빠른 속도로 국토 전반을 거미줄처럼 이어갔다.

이어 호남선과 경원선 충북선 전라선 중앙선 등 간선철도들이 완성된뒤
일제말기에는 총연장 6천여km에 달하는 최대의 국영기업체로 부상했다.

정부수립이후 운수부를 교통부로 개편, 전열을 재정비했지만 곧바로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철도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기관차의 51%, 역사 41%, 철로 7.5%, 교량 12%가 파괴되는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 철마는 쉬지 않고 달렸다.

전쟁중인 51년7월에는 유엔군의 디젤기관차 35량이 선보이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기도 했다.

55년6월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던 운영권을 인수받은 한국철도는 영암선
영월선 함백선 등 산업철도를 건설해 훗날 국토개발과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63년 철도청의 발족은 본격적인 철도시대의 시금석이 됐다.

67년8월에는 서울역에서 증기기관차가 마지막 기적을 울렸고 68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선의 전철화를 지시, 전기철도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이에따라 72년 최초로 전기기관차 66대가 도입됐고 고한~증산간 10.7km
구간에서 시운전에 성공했다.

이어 71년 수도권 전철공사가 착공됐고 74년 8월15일 서울~수원및 서울~
인천, 용산~성북간 98.6km가 개통돼 수도권 전철시대가 개막됐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산 디젤기관차와 우등 전기동차가 개발돼 장비
국산화에 불을 댕기는 계기가 됐다.

90년대에는 늘어나는 철도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주요 노선의 복선화 내지는
복복선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묶기 위한 고속철도
사업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또 민자역사개발및 역세권 개발, 철도관련 상품개발 등 경영개념이 폭넓게
도입됐다.

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온 결과 철도는 이제 3만4천6백여명을
거느린 거대 공기업으로 성장했다.

선로 총길이만도 6천5백80km에 차량보유대수는 총 1만8천3백99량에 이른다.

또 하루에 2천8백38회를 운행하며 2백37만명의 여객과 14만t의 화물을
수송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