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단이 임대공단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 70~80년대 압축성장 드러머의 주역이었던 중소 제조업의 메카-국가공단
이 공장 임대.임차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다.

수백 수천평 부지에 들어섰던 중견급 공장이 자디잘게 쪼개져 더 작은
"개미군단"에 점거되는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단입주 기업들이 "IMF 한파"를 견디다 못해 자신의 사업은 포기하거나
대폭 줄이면서 임대료를 올리는 쪽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로 인한 폐해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야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방편일 수는 있다.

그러나 장기적 국가적 차원에서 볼때는 연구개발투자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에 미치지 못하는 공장의 증가는 미처 예상치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인천광역시 남동공단.

중소제조업의 메카인 이 공단에서 기계소리가 잦아들고 있다.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문을 닫는 업체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집 건너 한집 꼴''이라는 소리가 나올만큼 입주업체들이 계속 쓰러지고
있다.

올들어 1백99개 업체가 휴업 또는 폐업했다는 남동공단본부의 집계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살아남은 공장''이라해서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공장가동률이 65%에 지나지 않는다(공단본부).

하지만 실제 공장가동률은 50%를 훨씬 밑돈다는 게 입주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속에서 남동공단에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장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빌려주는 이른바 임대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국가공단이 임대공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남동공단 2단지 1백35블럭에 자리잡고 있는 D산업.

6백여평에 달하는 이 공장은 다른 공장과는 다르다

공장안에 들어가면 부분 부분 칸막이가 돼 있고 각 칸막이에서 나오고 있는
제품이 제각각이다.

모두 5개로 구분된 공장에서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고무부품에서부터 링,
롤러스케이트, 체인, 화공약품 등 서로 연관이 없는 제품들이 뽑아져 나오고
있다.

임차공장들이 1백평씩 임대를 얻어 조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무제품을 생산하는 주원물산의 김종길(46) 사장은 "장사 안될 때는 큰
손해 없이 사업을 포기할 수 있는 임차공장이 제격"이라며 "한달 임차료와
관리비 등으로 3백만원을 내고도 5백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만족해
하고 있다.

공단옆을 흐르는 승기천변에 위치한 B금속.

공장명패를 보고 회사로 들어갔다가는 당황하기 십상이다.

겉으로 봐서는 부지 2천평에 건평 8백평의 제법 큰 공장이다.

그러나 공장안으로 들어가면 정작 B금속은 없고 9개의 다른 회사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임대공장 수를 늘리기 위해 공장내부에 판넬을 설치, 아예 간이 2층 공장
으로 운영하고 있다.

프레스와 유압기기 등 중기계를 사용하는 회사는 1층에서, 가벼운 경공업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2층에서 조업을 한다.

남동공단에서 공장구조가 2층으로 된곳은 거의 대부분 임대공장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한때 B금속을 운영했던 박청일(54)씨는 지난 3월부터 공장을 정리하고
임대로 돌아섰다.

박씨는 "한달에 1천만원 가량의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다"면서 "수십억원씩
들여 공장을 가동하면서 판로확보에 골치를 썩이던 때에 비하면 차라리
속이 편하다"고 말한다.

박씨처럼 자가공장을 완전히 임대로 돌릴수 있게 된 것은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등 관련규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규정은 회사소유자가 사업자등록증에 부동산임대업을 추가할 경우
자가공장을 임대해 줄수 있게 했다.

한마디로 제조업자가 부동산임대업도 병행할 수 있게된 것이다.

지난 7월말 기준으로 볼때 남동공단 입주업체 2천8백34개중 임대공장은
1천50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공단본부에 신고된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파악되는 임대공장수는 대략 2천5백개로서 자가공장수를 훨씬
상회한다.

남동공단의 이같은 임대공단화는 많은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다.

제조단위의 영세화로 인해 생산제품의 품질과 생산성이 저하되는데다 기술
개발이 어렵고 장기적인 투자가 불가능해진다.

실제 올들어 남동공단 전체의 연구개발투자 비율은 매출액의 2%도 안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영광금속의 노창석(53) 사장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긴 하지만 영세
소기업들만 북적돼 국가공단으로서의 기능이 크게 퇴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업환경이 어려워지자 사업을 하기보다는
건물이나 부지를 임대해주고 편하게 살겠다는 기업가 정신, 기업의욕의
쇠퇴현상이다.

중소기업인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시들어가는 공단의 불씨를 지피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공단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 인천=김희영기자 songki@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