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국왕을 제외하고는 어떤 권문세가도 집을 정남향으로
만들지못했다.

정남향은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방위였다.

정남향으로 세워진 문은 정궁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한양 8대문의
정문인 숭례문(남대문)정도에 불과했다.

이처럼 남향을 강조한 것은 남방이 화기를 의미하는 방위이기 때문이다.

유교의 문치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은 문명지상을 뜻하는 화기를
가장 중시했다.

광화문의 처음 이름이 오문이었던 것도 조선시대 화기 중시사상을 잘
보여준다.

말에 해당하는 오시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에 해당한다.

태양이 가장 뜨거운 시간이다.

계절적으로 오는 여름 한가운데를 의미한다.

12지지중 불기운이 가장 강하다.

오문은 세종때 와서 "빛이 나라밖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뜻의 광화문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역시 화기와 관계된 작명이다.

화는 오행에서 예절을 관장한다.

남쪽 대문에 예절을 숭상한다는 숭례문이란 이름을 붙인 데에도 화기를
강조하는 뜻이 담겨있다.

이 광화문앞에 조그만 해태상이 하나 서 있다.

해태는 상상의 괴물로 시비를 가리며 선악을 구분하는 영물이다.

불을 먹고 산다고 해서 화기를 이기는 수기를 상징한다.

대원군은 경복궁에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함에따라 이를 막아보자는 의도에서
남쪽방향으로 해태상을 세웠다.

궁궐의 화기와 관악산의 화기가 만나 화재가 났다고 믿었던 것이다.

해태는 지금도 빛나는 눈으로 관악산을 응시하고 있다.

상징적이지만 조선왕조의 음양오행사상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있는
대목이다.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교수/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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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