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식 <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 국제경영학 >

세계경제 불안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개월동안 계속된 아시아의 경제위기 자체만해도 그 심도를 더해가고
있다.

해외전문가들의 경제 예측을 종합해 보면 금년도 국내총생산(GDP)추세는
인도네시아 마이너스20%, 태국 마이너스10%, 한국 마이너스7%, 말레이시아
마이너스5%, 홍콩 마이너스5%, 일본 마이너스2.7% 등이다.

아시아권 경제는 가히 1930년대 구미경제공황에 비교될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1세기는 태평양시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은 사라졌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이제는 동유럽과 중남미의 후진국
들에까지 파급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가 아는대로 8월17일 러시아 정부는 루블화 평가절하와 더불어
4백억달러에 달하는 루블화표시 국채와 2백억달러의 민간은행 해외채무에
대한 90일간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다.

이 모라토리엄은 1백%가 넘는 고금리를 노리고 몰려들었던 해외금융투자자와
러시아은행들간의 루블 선물환 계약(약 1천억달러)에도 적용하도록 돼있다.

따라서 국제금융계에 미치는 파장은 날이 갈수록 엄청나게 커져가고 있다.

아시아의 심화되는 경제난국과 이번 러시아의 금융위기는 전세계 후진국들에
대한 해외투자 분위기를 더욱 냉각시킬 것이 뻔하다.

가장 염려되는 지역은 아무래도 중남미 후진국들이다.

이 지역 주식값은 금년들어 이미 40%이상 폭락했다.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브라질에서는 레알화의 평가절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브라질의 올해 재정적자는 GDP 대비 7%로 러시아의 6%보다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때의 태국과 인도네시아처럼 남미 국가들은 금년도
경상수지 적자가 GDP대비 4.2%로 예측되고 있어 동유럽 국가들보다 더
열악한 형편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러시아 금융위기 과정에서 IMF(국제통화기금)가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7월중순 IMF의 주선으로 서방세계는 총 2백26억달러 상당의 긴급 구제금융을
러시아에 제공키로 합의했으나 겨우 한달도 못돼 러시아 정부는 모라토리엄과
루블화 평가절하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뿐만아니라 IMF가 올해 제공하기로 한 1백12억달러중 83억달러는 IMF의
자체자금 고갈로 20년만에 처음으로 IMF와 G10그룹 선진국들간에 체결돼
있던 GAB(General arrangements to Borrow)긴급자금에서 빌려쓰는 것이다.

아시아 외환위기로 자체자금이 거의 고갈되다보니 IMF도 이제는 겨우
우리나라 외환보유고의 4분의1밖에 안되는 1백억달러 정도의 여유자금만
남겨두고 있다.

만약 앞으로 동유럽과 중남미 국가들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오면 현재의
빈약한 IMF 자금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IMF는 이미 이같은 심각한 자금부족 상황을 예상하고 작년 홍콩에서 열렸던
IMF와 세계은행의 합동 연차총회때 쿼터(Quota)인상안을 가결한바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 의회의 반대로 지금까지 쿼터 인상안이
비준되지 않고 있고 비준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미의회의 주장은 IMF의 구제금융이 외환위기를 당한 후진국들의 국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진국들에 높은 이자로 돈놀이 하다 외환위기
로 손해볼 처지에 놓인 국제금융기관들만 구제하는 결과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악화돼가는 개도국들의 경제위기는 IMF의 자금경색 현상과
맞물리면서 더욱 불길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열악해진 국제경제 환경 속에서 우리 정부는 보다 과감하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완성하지 않으면 작년보다 더 혹독한 제2의 외환위기를 당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