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특징 ]]

젊은이들 중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박정희 군사정부에서 처음
만들어진 장기발전계획인 줄로 아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미 얘기했듯이 자유당 정부는 3개년 계획을 만들었고 민주당
시절엔 5개년 계획이 입안됐다.

박정희 정권은 이 두 계획을 바탕으로 해서 5개년 계획을 짰다.

(이 관계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다)

그러면 3개년계획과 5개년계획은 어떤 점이 다른가.

61년3월 내가 울프 박사에게 했던 5개년계획 브리핑 내용을 따라가보자.

나는 울프 박사에게 5개년 계획이 3개년 계획에 비해 내용과 작성기법에서
큰 진전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5개년 계획은 우선 목표 성장률을 3개년 계획 때의 연 5.6%에서 6.1%로 크게
높여 잡았다.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 지난 2년간(3개년계획 작성 시작은 58년3월) 석탄 시멘트 전기 등
제조업 관련 분야에서 큰 성장이 있었다.

2. 인구 성장률이 연 2.88%로 크게 높아졌다.

성장률을 높여야 1인당 소득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3.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에 호응해 민주당 정부는 "경제
제일주의"를 내걸고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그리고 나는 두 가지 계획의 근본점인 차이점을 설명해나갔다.

우선 거시적 틀이 달랐다.

3개년 계획은 "균형 성장 이론"에 입각해있었다.

반면 5개년 계획은 "전략 부문 중점 투자"전략을 택했다.

이에 관련된 구절을 "제1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시안)(1960년5월 발간)"에서
인용해보자.

"요컨대 3개년 계획방식은 각 부문의 균형적 성장이란 형식에 치우쳐
경제의 총체적인 면이 경시됐고 정부의 주체적인 의욕을 표시할 수 없었다.

(중략) 과거의 경향치를 연장해 장래에의 추세치를 상정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애로부문 타개를 목적으로 하는 계획수립자체의 의도를
실현하는데 미흡하다"

5개년 계획은 이런 관점에서 전력 석탄 비료 시멘트 화학섬유 정유 철강,
그리고 농업부문을 중점 부문으로 선정했다.

이는 자원과 기술을 이 특정부문에 집중 투입해 타사업에 "유도적 역할"을
하게 하는 "불균형 성장 전략"에 가까운 것이었다.

5개년계획은 3개년계획과 작성방법에서도 크게 달랐다.

3개년계획에서 활용한 "콜름(Colm)방식" 대신 "해로드-도마(Harrod-Doma)
방식"을 택했다.

콜름방식이란 취업인구와 1인당 생산액을 토대로 GNP(국민총생산)를
추정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노동력이 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해 노동력 부족이 성장의
최대제약조건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같이 노동력은 무한한 반면 자본이 절대 부족한 나라에선
맞지 않는 모델이었다.

이에 반해 해로드-도마모델은 성장제약조건으로 투자(저축)와 국제수지를
상정한다.

우리나라 실정에 훨씬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면 3개년 계획 작성자들은 왜 콜름방식을 적용했을까.

당시에도 소련과 인도의 경제계획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방식이어서 참고할 수가 없었다.

53년부터 시작한 타이완의 4개년 계획(53~56년)자료도 입수했다.

이는 각 프로젝트를 모아 정리한 것이어서 참조 가치가 적었다.

이웃 일본도 전후 첫번째 장기계획인 "경제자립5개년계획"을 콜름방식에
따라 작성했기 때문에 3개년 계획 작성자들은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도
못했다.

게다가 콜름모형은 비교적 간단해서 적용하기 쉬웠다.

또 창시자인 콜름박사는 당시에도 유명했다.

50년과 60년에 연이어 "60년의 미국경제" "70년의 미국경제"라는 10년 장기
예측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다시 울프 박사에 대한 브리핑으로 돌아가자.나는 자본계수와 성장모형을
흑판에 써가면서 설명했다.

자본계수를 2.5~3%로 상정해 GNP의 목표성장률, 각 산업별 성장에 필요한
투자소요액을 산출하는 과정을 밝혔다.

그리고 5개년 계획은 이들 소요 투자를 뒷받침할 자원조달에 역점을 뒀다는
것을 강조했다.

1인당 1백달러 내외의 낮은 소득으로 국내 저축은 한계가 있는 만큼
외부재원조달이 앞으로 계획 성공의 관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57년을 피크로 해 미국 원조는 미국 자체의 국제수지 적자 압박으로
감소 추세에 있었고 이를 대체할 외부차관 도입 등 새로운 체제 정비가
급선무임을 설명했다.

따라서 일본과의 경제협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나는 높은 교육열과 인적투자, 민간경제활력 등에 비춰 정치만 안정되면
로스토 박사의 소위 "도약단계" 진입도 가능할 것이라며 브리핑을 마쳤다.

울프박사의 총평 기간.한참 동안 메모지를 정리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두 계획이 모두 불변가격(fixed price)으로 표시돼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상인플레를 고려한 상정가격(shadow price)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매년 총자원 배분과 함께 실행계획을 별도 작성해
추진하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질 염려는 없다"고 답했다.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끼리 마련한 장기개발계획이 크게 잘못된 것이 없다는 외국인 경제
학자의 평가에 모두들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울프 박사의 마지막말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한국은 동남아 후진국들과 비교해 금융제도가 잘 갖춰져있다.

민간부문의 역할과 활기가 두드러진 것 같다.

앞으로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은 높다고 할 수 있다"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