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앞바다 명태는 맛있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효원물산의 김영일사장(56)은 북한산 명태만 보면 진땀난다.

지난 91년말 북한산 명태 때문에 수억원의 손해를 봐서다.

동해에서 잡힌 명태 2천t을 들여오긴 했으나 원산지 증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통관을 시켜주지 않아 이런 일을 겪게 됐다.

세관창고에 잠자던 명태를 갖은 어려움 끝에 6개월뒤 통관을 했지만
kg당 1천원이던 명태값이 3백원이하로 떨어진 뒤였다.

김사장이 북한과의 교역에서 실패한 건 명태가 처음은 아니었다.

91년 6월엔 더 심한 곤욕도 치렀다.

북한에 거래선이 없던 김사장은 홍콩의 중개상을 통해 시멘트 2만t을
주문했는데 시멘트를 가지러 간 배가 4개월만에야 돌아왔다.

그나마 주문량의 25%만 싣고 돌아왔던 것.

이 사건으로 약2억원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지난 70년부터 무역업을 해온 김사장은 북한과의 교역에서 이렇게 연거푸
실패하자 정말 오기가 났다.

그래서 그는 "언젠간 북한에 직접 진출해 승부를 걸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8년간 그는 북경을 수없이 드나들며 북한측과 거래를 계속했다.

결국 지난해초 김사장은 북한의 주요무역회사인 동흥무역과 손을 잡게
됐다.

이때부터 홍콩중개상에 시달렸던 한이 풀리기 시작했다.

북한을 방문, 직접 고른 송화가루 등 식품을 들여와 짭잘한 재미를 봤다.

지난해말 김사장은 북한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베이징을 거쳐 나진호텔에 도착하자 북한 조선대외경제협력위원회의
최승호과장(40)이 반갑게 맞아줬다.

두사람은 만나자 마자 곧장 승용차로 나진의 후창지역으로 향했다.

김사장은 이곳에 1만평 규모의 공장을 짓겠다고 제안한 터였다.

김사장의 제의에 북한측은 흔쾌히 승락했다.

그러나 그는 동흥무역과 합작을 하고 싶었다.

원료및 판로확보를 위해서였다.

그는 동흥무역의 합영담당부장과 일주일간 줄다리기를 한 끝에 50대
50으로 합작공장을 세우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1차 투자규모는 70만달러. 효원은 현재 이곳에 부지를 다 닦아놓고
내달부터 공장건축에 들어간다.

김사장이 여기서 시작하는 장사는 다름아닌 명태사업.

그는 오는 연말이면 이 공장에서 명태와 명란등을 가공해 반입해오거나
해외수출에 나선다.

7년전 명태 때문에 당한 뼈아픈 손실을 이제서야 되돌려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김사장처럼 북한과 거래를 트려다가 포기한 중소기업은 90년이후
약 3백여개 업체에 이른다.

이들은 홍콩중개상들에게 시달리다 돈만 날리고 말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서전어패럴 두레마을 씨피코국제교역 세원유화
평화양행 대동무역 무해실업 금남실업 오륜 등은 의류 농수산물 주류
기계설비등 분야에서 북한과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결같이 이제서야 조금씩 제걸음을 찾아간다.

김사장은 요즘 새로운 꿈을 하나 키우고 있다.

원산 앞바다에서 잡힌 명태를 트럭에 가득싣고 판문점을 통해 돌아오는
것이 꿈이다.

< 이치구 중소기업 전문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