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지 두달여 지났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제를 도입한 상장회사들은 그동안
한두번정도 이사회를 열었다.

사외이사들이 주요안건 처리에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최고경영자를 견제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은 편이다.

경영투명성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이사회활동현황, 10대그룹 사외이사의 특징 등을 점검해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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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경기도 기흥에서 열린 삼성전자 이사회.

사외이사가 선임된후 두번째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경영진과
사외이사들간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의장인 윤종용 사장이 경영위원회를 이사회산하에 설치하자는 안을 올리자
사외이사들이 경영위원회의 법적 권한과 책임이 무엇이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경영위원회에 업무를 위임했을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이 안건의 처리를 보류했다가 나중에 모든 활동상황을
이사회에 보고, 사후 승인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경영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를위해 3명의 이사회전담팀을 총무부에 신설해 이사회보고 승인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최근 열리고 있는 기업체 이사회는 이처럼 과거와 달리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사외이사들은 주요안건마다 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의 경영정책에 의문이 나면 질문을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 회사의 주요한 투자의사결정과 관련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
임직원들을 긴장시키는 경우도 있다.

포항제철의 사외이사로 활동중인 슈발리에 전뉴욕은행고문은 신규투자
안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는 이사회에 신규투자안이 올라오면 기존 시설을 보수하는 안과
수익률 비교를 해 보았는지 묻는다.

또 매출액 순이익률등 고전적인 수익성 지표는 물론 새로운 경영지표로
거론되고 있는 경제적 부가가치(EVA)도 따진다.

그래서 포철직원들 사이에는 최근들어 신규투자계획을 세울 때 반드시
기존시설의 보완안과 비교하고 경제적 부가가치도 검토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국인 사외이사들은 유교적인 정서탓인지 이사회에서 대체로 점잔을
빼지만 슈발리에 이사는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내놓는다는게 포철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해에 국내 기업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는 가운데서도 포철이
6천여억원의 흑자를 낸 배경에는 슈발리에 이사의 사려깊은 조언이
한몫했다는게 포스코 경영연구소의 분석이다.

기업이 해외에 사업부문을 매각할때 사외이사들이 주요한 법률자문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삼성중공업의 사외이사인 서정우 변호사는 최근 삼성중공업이 볼보사에
중장비부문을 양도할때 법률자문을 했다.

지난달 22일 삼성중공업 이사회에서 중장비사업부문의 양도건이 올라오자
서 변호사는 계약조건등 계약서 작성시의 주의할 점을 일일이 알려주었다.

회사내 법조팀이 활동하고 있지만 서 변호사의 자문이 크게 도움을
줬다는게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 참석, 기업의 경영활동에 관해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고있다.

금융기관출신 사외이사는 투자수익률측면에서 많은 질문을 하고, 공무원
출신 사외이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측면에서 충고를 하거나 업무수행절차에
대해 조언한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이영호 연구위원)

그러나 사외이사들의 조언은 말그대로 "조언"을 하는 차원이지
최고경영자의 경영독주를 견제할 정도는 아니다. (LG경제연구원 류현
컨설턴트)

우선 사외이사가 전체 이사의 10%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이사의 80%정도가 사외이사로 구성된데 비하면 숫적으로
크게 열세이다.

거기다가 일부 중소기업의 경우 대주주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많이 선임됐다.

독립성결여로 견제를 기대하기는 구조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또 사외이사들은 회사의 경영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상장사협의회가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다.

교육이 끝난후 가진 토론회에서 일부 사외이사들이 회사경영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단순히 책임을 면하기위해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사외이사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할수 있도록 사외이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회사경영정보를 쉽게 접근할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할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아무리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독립된 위치에서 활동하더라도 회사내의
경영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할수 없기때문
이다. (상장사협의회 정준영 상무)

사외이사에게 이사회소집권을 부여하거나 이사회를 정기적으로 열도록
의무화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함께 사외이사의 견제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사회의장과
최고경영자를 분리시켜 사외이사에게 이사회의장을 맡겨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있다.

물론 현재 일부 은행에서는 이사회의장과 최고경영자를 분리시켜놓고 있다.

보람은행은 구자정 은행장이 대표이사를 맡고있지만 이사회의장은
보람은행의 주요주주인 코오롱그룹의 이동찬 명예회장이 맡고있다.

하나은행도 지난해 2월부터 윤병철 회장이 이사회의장을 맡아 은행장
(김승유 은행장)과 이사회의장을 분리 운영하고있다.

그러나 이들 은행을 제외하면 대부분 최고경영자가 이사회의장을
겸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등 일부 기업이 최고경영자와 이사회의장을
분리시킬수 있는 근거를 정관에 마련해 놓고있으나 당분간 겸임한다는게
이들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국 자동차회사 GM의 사외이사들은 지난 91년 누적 적자의 책임을 물어
이사회의장이자 최고경영자인 슈템펠 회장을 퇴진시킨후 3년동안
최고경영자와 이사회의장을 분리, 효과를 본 적이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사회의장과 최고경영자를 분리하는게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절대적으로 열세인 경우
분리시키는게 견제의 효과를 높인다는게 대체적인 의견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증권거래소 송명훈 이사)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지 2개월여 지났지만 최고경영자에 대한 견제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 박주병 기자 jb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