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 <국립공주박물관장>

삼국사기 열전에 소개된 인물들은 대부분 당대의 훌륭한 남자들이다.

여인들의 경우 효녀나 열부로 드물게 소개될 따름이다.

이를 보면 여성에 대한 평가가 매우 제한된 기준에 의했던 것같다.

신라시대의 명민하고 지혜로웠던 선덕여왕에게조차도 당시의 여론은
비판적이었다.

한 신하는 여자를 암탉과 암퇘지에 비유해 외부의 일에 참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서술한 서경의 빈계지신과 역경의 이시부척촉을 인용하면서
선덕여왕의 왕위계승이 국가를 망하게 하는 일이며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이말의 타당성은 남자 못지않은 용감성을 발휘하고 많은 일들을
해낸 여자들을 떠올려보면 곧 판가름난다.

순국정신이 투철했던 유관순 열사, 장편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선생,
프랑스의 퀴리 부인, 영국의 대처 총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국가와 민족의 어려운 시기에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온 몸을 바쳐
대의를 이루어냈다.

최근 IMF시대를 맞아 여성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은 예전의
여성관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렇듯 여성이 어려운 상황에서 남성과 더불어 상호보완해 나가는 중요한
위치임에도 현실적으로 여성의 사회참여는 수월치않다.

이젠 더이상 여성인력을 고의로 매장하는 일이 당연시돼서는 안된다.

사회전반에서 기득권을 쥔 남성들은 왜 여성을 일의 동반자로 평가하지
않는가.

또한 여성은 스스로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가.

모두의 사고가 변하지않는 한 우리나라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마저 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