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문진곤직업소개소.

20일 이른 새벽부터 서울뿐 아니라 전라 충청 경상도 등 각지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올라온 일용직 근로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

이날 아침 이곳을 노크한 구직자만 70여명.

이들중 대부분은 몇달째 일자리를 못구해 주머니가 비어있다.

점심은 공짜인 교회에서, 잠은 서울역 지하도에서 해결한다.

그래도 가슴속에 안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아침마다 이들을 직업소개소로
이끈다.

전라도 광주에서 지난달초 올라온 이모(40)씨는 "벌써 한달째 하루도 일을
못해봤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직업소개소의 김종수(44) 총무는 "하루종일 한명도 업체와 연결시키지
못하고 허탕을 치는 날이 대부분"이라며 "15년동안 이 자리에서 일했지만
이처럼 일자리가 없기는 처음"이라고 하소연했다.

김총무는 이같은 현상이 서울역 부근에만 국한된게 아니라고 말했다.

영등포와 종로주변의 주요직업소개소에도 하루 수백명씩 몰린다는 것.

일용직 근로자들이 이처럼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실업수당 퇴직금 등은 먼 세상 이야기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벅차다.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이들중 상당수가 무일푼으로 전락, 자포자기하면서 더이상 내몰릴 수 없는
부랑자나 걸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구인자에게 연결돼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많아야 2~3명선에
그친다.

그래서 일용직 일당은 기준이 아예 없어져버렸다.

구인자나 구인업체가 부르는 값이 일당이다.

아무 기술이 없는 잡부의 일당은 6만원에서 3만원이하로 줄었다.

미장 철근 도배 목공 벽돌쌓기 등 기술이 필요한 노무자 하루벌이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내렸다.

연령대도 40~50대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30~40대가 주류를 이룬다.

날품팔이로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대학생들도 많아지고 있다.

파출부나 식당에서 일하려는 여성도 급증하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 문을 닫는 직업소개소들이 늘고 있다.

서울역 주변의 20여개 업소중 올들어 4곳이 문을 닫았다.

70여개 업소가 성업하던 영등포역 부근에서도 최근들어 30개 업체가
무더기로 폐업했다.

한길연직업소개소의 한길연(45) 소장은 "일용직을 구제하기위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류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