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세상일을 정치가 망가뜨린 가장 대표적인 예가 과세문제다.

역대정부가 수십년 노력끝에 어렵사리 정착돼 가던 양력 단일과세 추세를
느닷없이 신.구정 이중과세로 후퇴시킨 것은 순전히 선거에서의 득표만을
의식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 5-6공 정권의 대실책이다.

물결 흘러가는 대로, 백성이 즐기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라지만
개중에는 그래선 안될 일이 분명 있다.

도박과 미신 같은 것들이다.

본란은 공론이 일때마다 이중과세가 유해하며 양력과세로의 통일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오랫동안 견지해 왔다.

지난 20일 대통령직 인수위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음력설 연휴문제와 관련, 이중과세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 검토하라고 지시, 그 위에 양력과세가 타당하다는 개인 의견까지
부연했다고 한다.

아마도 여론조사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정부의 판단이 서면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반대여론의 압도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바른 습관 들이기는 어려워도 놀고 먹고 마시는, 몸에 편한 타성은 빨리
익히는게 인지상정이다.

85년"민속의 날"로 하루공휴가 된후 89년 "설날"-사흘연휴, 91년 "신정"
격하-연휴 이틀로 단축에 까지 10년을 넘는 사이 이제 인습이 되다시피됐다.

따라서 김당선자를 비롯 여야를 초월해 양력 단일과세의 합리성 내지
불가피성을 알리는 기간을 거친 후에 여론수렴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백년대계적 근본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확고한 철학을 담은 지도자의 의지이다.

그저 카메라앞에 서면 정신을 잃고 인기라면 아무 소신도 없이 이리 따르고
저리 바꾸는 지도자는 나라를 그르칠 따름이다.

비록 지금이 어려운 때이긴 해도 김당선자가 인기없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은 것은 긴 안목의 용단이라 본다.

둘째 합리성 불가피성의 충분한 설명이다.

차례지내고 과세하는 것이야 기본적 자유권에 속하지만 음.양력 정초
며칠씩을 공휴일로 하는 것은 생산성문제 외에도, 가령 공사간에 언제
새해인사를 나눠야 할지조차 혼동되는 종교이전의 문화충돌 현상을 초래한다.

셋째 설날이란 어디까지나 한해의 첫날이다.

추석과 다르다.

일상생활에서 양력을 버리고 음력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백퍼센트 불가능할
바에야 민속의 날, 조상의 날이면 됐지 박수소리 따라 역사를 되돌린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경멸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더욱이 OECD가입이 그리 급하고 세계화란 구호에 자아도취하는 수준은
문제해결능력 전무라 아니할수 없다.

모처럼 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난국극복 총의가 형성된 이 시점에서
영원히 그르칠뻔한 역사적 과오를 과감히 고치자.

만일 또다시 지방선거 등 인기영합에 일을 그르친다면 이 나라엔 장래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