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협상과 관련해 정부의 신뢰도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
되고 있다.

협상과정에서 논의된 사실을 은폐했거나 국내에 사실과 다르게 발표한
경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내용들이 부실금융기관 정리문제나 IMF측이 제시한 구체적인 이행
조건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재경원측은 물론 "사실대로 알려질 경우 불안심리의 확산과 금융시장의
대혼란이 예상되는 점 등을 감안, 국익차원에서 그랬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그 빈도가 너무 잦은 것이 사실이다.

감추었던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오히려 금융불안을 더 자극하는게
현실이다.

이번 IMF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대표적인 "거짓말"은 은행구조조정에
대한 내용이다.

재경원관료들은 수차례에 걸쳐 어떤 경우에도 은행폐쇄조치는 없다고 공언해
왔지만 지난 5일밤 미국 워싱턴 IMF 본부에서 날아온 의향서에는 은행폐쇄
등 구조조정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들이 명기돼 있었다.

IMF와 협상내용중 내년도 목표가 3% 수준으로 발표된 경제성장률도
마찬가지다.

IMF측은 2.5%라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재경원은 이 영문의향서를 언론사에 배포하는 과정에서 예민한
사안들에 대한 번역을 누락함으로써 또 다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번역에서 빠진 내용은 우선 우리나라의 단기외채가 1천억달러로 추정된다는
대목을 들수 있다.

재경원과 한은은 1년미만의 단기외채가 6백80억달러라고 발표했지만 8일
드러난 "IMF 보고서"에서도 사실상 한국의 단기외채가 1천억달러 수준으로
돼있다.

또 통화.환율정책, 금융기관 구조조정부문은 IMF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
의사결정을 한다는 내용이 제외돼 있으며 외국계 금융기관의 국내진출도
"아무런 제한없이 즉각" 허용돼야 한다는 내용도 빠져 있다.

내년초 추가자금이 들어올때는 적대적 M&A(기업매수합병)를 허용키로 해
놓았으면서 최근까지도 합의는 물론 거론사실조차 없다고 부인해 왔다.

이같은 점들이 고의적인 누락에서 비롯됐는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온 행태를 감안할 때 오해를 살 여지는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