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96년무렵 이탈리아의
옛 이야기에서 취재한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탈고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희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벨몬트에 사는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한 여비를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소유 선박을 담보로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리면서 돈을 갚지 못할 때에는 자신의 살
1파운드를 떼어주겠다는 증서를 써준다.

포샤는 구혼자들에게 금 은 납으로 된 세가지 상자를 내놓고 자기의
초상이 들어 있는 것을 고르게 한다.

바사니오는 납으로 된 상자를 골라 구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배가 미처 돌아오지 않아 생명을 잃을 위기에 놓인다.

그때 남장을 한 포샤가 베니스 법정의 재판관이 되어 살은 주되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함으로써 샤일록은 패소하여 재산을
몰수당하고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 받는다.

그뒤 안토니오의 배는 돌아오고 샤일록의 딸 젠카도 기독교도인 애인
로렌조와 결혼한다.

"베니스의 상인"은 당시 런던시민이 지녔던 반유태감정을 배경에 깔고
있는 희극이다.

그러나 여기에 묘사된 샤일록은 단순한 악당이 아닌 비극적 인물이
아닐수 없다.

돈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는,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샤일록이라는 이름은 지독한 수전노 내지는 구두쇠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흔히 쓰이게 되었다.

최근 베니스처럼 항구도시인 부산에서 "빚을 갚지 않을 경우 장기를
떼내 팔겠다"는 각서를 받아낸 사건이 일어나 샤일록의 "살 절제 증서"를
무색케했다.

채권자가 청부인을 시켜 채무자로부터 받아낸 것이라지만 너무나
끔찍스러운 일이다.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많아 거액을 챙길수 있는 현실이
되어 있다고는 하나 인면수심의 냉혈한이 아니고는 저지를수 없는 범죄가
아닐수 없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의 비인간성은 어디까지나 희극에
나오는 허구의 세계에나 있음직한 일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