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고 물이 깊은 곳에서 자란 사람은 이상이 높고, 평야지대에서
자란 사람은 마음이 넓고 넉넉하다는 옛말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성장기에 거치는 주변환경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는 환경적 요소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것 보다도 크다.

집은 사람의 기운을 충전시켜주는데다 거주자의 성격이나 신체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때문이다.

또 집은 우리삶에서 중심터전으로의 역할을 해내고있다.

이같은 주거문화는 풍수지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풍수에서 집이나 건축물이 단순히 외부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기능만을
지닌것이 아니라 땅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 주택이 사람의 인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모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좋은 주택은 사람들을 평화롭게 해주는 반면 흉한 건물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불행으로 이끄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배산임수의 안정적인 지형을 선호했으며 강한
바람을 피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을수있는 좌청룡우백호의 명당을
찾곤했던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밖에 주택의 공간구조에서도 최대한 자연과같이
숨쉬고자 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집을 지을때 들어가는 자재에서부터 구조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고려,
주택이 자연과 함께 숨쉴수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주택은 거주자가 선택할수있는 여지가 없이 기성품으로
제공된다.

대도시 어디를 둘러봐도 아파트일색이다.

또 조그만 땅에도 다세대나 다가구등 밀집형주택이 들어서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게 규격화된 공간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을
갖게 되기 쉽다.

심성을 바르게 키울수있는 형태의 집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 지고 있다.

과거엔 특히 요즘처럼 각종 전기제품과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아
전자파에대한 걱정이 없고 자연적으로 통풍이 되었으며 태양광을 이용한
살균효과의 혜택까지 누렸다.

게다가 건축물의 적절한 구조와 방위, 주변 지형과의 조화 등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건축에서 안정감을 느낄수 있었다.

물론 요즘엔 이같은 주거전통을 계승할만한 여건이 돼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연과 부조화된 주택을 무작정 물량위주로 짓는데엔 문제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연과 어느정도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주거형태를 개발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정광영 < 한국부동산컨설팅 대표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