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클럽은 최근 한국 프레스 센터에서 세계 유수 언론인을 초청, ''정치와
언론''이란 주제로 창립 40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의 초청 연사로 나온 미국의 ''볼티모어 선'' 칼럼니스트인
줄스 위트커버(Jules Witcover)의 강연내용을 요약한다.

< 정리 = 김혜수 기자 >

======================================================================

[ 선거보도 방향 ]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과거와는 매우 다르다.

다수의 후보가 출마하고 있으며 유세내용이나 방법도 크게 달라졌다.

당연히 언론의 보도태도도 함께 변화했다.

TV시대가 막을 올리기 이전 미국의 정치담당 기자들은 기사에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기자는 기사를 쓰되 결코 기사의 일부는 될 수 없는 "무명의 여행자"란
오랜 전통때문이었다.

그렇지만 TV가 나타난 이후 이같은 관행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빈번히 TV화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때로 뉴스를 전달하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TV에 출연하는 기자들은 종종 저널리스트라기보다는 연예인같은 역할을
떠맡고 있다.

"명성"과 "부수입"이란 유혹에 이끌려 TV에 출연하는 기자가 날로 늘어
나는 가운데 이러한 사실은 미국 언론의 신뢰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신문 및 출판 저널리즘이 요구하는 정확성과 사고력은 뒤로한채 그저
번드르르한 입담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전문적인 정치기술자 집단이 등장한 이후 주요후보에 접근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선거운동 취재도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40년전만해도 정치부 기자들은 매일 대통령 후보들과 직접 만나 하루를
보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때론 기자가 후보자의 친밀한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후보자들은 언론이 자신의 후보에 대해 가능한 호의적인
보도를 하도록 교묘히 조종하려는 참모들로 둘러싸여 있다.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도 문제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쟁과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온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정치보도에서 후보자들에 대한 깊은 냉소주의가 번졌다.

이같은 분위기는 소위 "고차(gotcha)"저널리즘을 불러 일으켜 기자들 특히
젊은 기자들이 후보자들의 사적인 실수나 성격상의 결함을 무자비하게 파헤
치는데 몰두하는 풍조를 낳았다.

이에 따라 후보자들은 갈수록 언론에 대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됐고
결국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손실을 초래했다.

또 오늘날 후보자들이 전통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며 연설을 하는 선거유세
관행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갈수록 TV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TV화면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청중이 유세현장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담당 기자들은 이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후보자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연설을 기록하는 것 이외에도 TV에서 방영되는 후보자
들의 연설과 그들의 홍보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광고를 주시해야 한다.

이들은 엄청난 대가를 받는 이른바 "고용된 총잡이"로 자기진영의 후보에
대한 자질과 자격을 홍보하기 보다는 상대편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선거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정치담당 기자들은 대통령 선거자금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기자들이 이같은 과업을 철저히 수행하지
못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선거운동 마지막 몇주를 남기고서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진영이 선거
기금을 과도하게 모금했으며 아시아 및 기타 지역의 외국인들로부터 불법
헌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중국정부가 미 의회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선거자금을 냈다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보고는 미국선거 제도의 온전성을 해치는 위협으로 더욱
부각됐다.

위에서 말한 사실들은 정치담당 기자, 나아가 언론의 책무를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언론의 임무는 마찬가지다.

주변상황이 아무리 복잡해지더라도 "건전한 의문"을 품고 진실을 추적해야
하며 유권자들에겐 후보자의 됨됨이를 알려줘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