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김현철씨 비리의혹수사가 영장청구라는 사법적 절차만을 남겨둔채
사실상 마무리됐다.

검찰은 3개월에 걸쳐 수사한 결과 한보비리와 관계없는 개인적비리로
결론짓고 구속이라는 사법처리를 밟기로 했다.

검찰은 현철씨를 상대로 이틀째 밤샘조사를 벌여 2백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과 이중 20억여원이 대가성 뚜렷한 뇌물자금임을
확정지었다.

또 16일 소환된 김기섭 전안기부차장과의 대질신문을 통해 비자금의
출처가 대선자금 잔여금과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청탁성 뇌물자금, 동문
기업인들이 정기적으로 건넨 활동자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철씨는 소환조사 초기에는 돈을 받은 사실만 그것도 극히 일부만 인정
했으며 대가성은 철저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관련인물과의 대질신문과 계좌추적을 통해 확보한 물증을 들이
대면서 압박해들어가자 조금씩 전면부인에서 일부시인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특히 비자금을 최소 10만원단위로 잘게 쪼갠후 익명성이 보장되는 양도성
예금증서(CD)와 무기명 산업금융채권 등을 매입하는 등 자금추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들이대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떨구어
버렸다고 수사관계자는 전했다.

현철씨가 비자금을 치밀하게 돈세탁하고 교묘하게 은닉해온 것이 오히려
대가성을 입증하는 부메랑이 되어버린 것이다.

단순한 정치활동자금이나 용돈명목이었다면 굳이 돈세탁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기업인들이 돈을 건넨 구체적인 정황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쉴새없이 다그치면서 현철씨의 자백을 얻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신한종금 경영권분쟁과 관련, 두양그룹 김덕영 회장이 3억원을 건넨
시점이 양정모 전국제그룹회장이 주식반환요구와 함께 구체적인 증거내용을
김회장측에 보낸 직후로 뚜렷한 현안이 걸려있었다는 것이 검찰측 설명이다.

사실 검찰은 현철씨 소환이전부터 상당한 물증을 확보했다며 사법처리에
자신감을 보여왔다.

다만 고민이라면 돈의 액수를 현직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결부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검찰이 소환이전에 현철씨가 기업인들로부터 매달 6천만원의 활동자금을
받은 사실을 흘린 것도 여론재판의 효과를 기대한 발상이었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수순은 다음주말께로 예상되는 현철씨 수사결과 및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에 대한 사법처리결과 발표.

검찰은 형사처벌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수사내용에서 제외시킨
대선자금 잔여금 부분과 국정개입의혹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는 선에서
사실상 수사를 종결지을 것으로 보인다.

현철씨를 한보비리와 무관한 개인비리라는 별건으로 사법처리한 검찰이
수뢰규모가 기대에 미흡하다는 평가와 대선자금 규명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대해 어떠한 최종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