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로 자유당 정권이 쓰러지고나서 37년, 공화국이 다섯차례나
바뀌었어도 부정선거는 모양만 다르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바야흐로 92년 대선자금 사용규모를 둘러싼 여-야 각축전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그러나 서로 제앞가림에 매달린 나머지 건설적 대안을 내는데 실기한
채 올 대선을 치른다면 부정선거 규탄, 전임자 감옥보내기를 개미 쳇바퀴
돌듯 반복하지 말라는 보장이 아무데도 없다.

지난 대선당시 여당만 아니라 어느 한 정당도 선거자금을 법정한도내서
썼다고 한들, 길을 막고 물어도 단 한사람 믿을 사람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각 당은 무슨 배짱으로 이리도 오래 얼굴만 가린 채 나는
아니라고 버티는가.

국민이 말은 안해도 탁트인 솔직성과 리더십을 이토록 목말라 갈구한
때도 고금 흔치 않을 것이다.

터놓고 얘기하자.

그동안 수많은 선거에서 입후보자든 정당이든 돈 마다고 거절한적 있는가.

커녕은 감언이설에 협박성을 가미,다다익선 자금모으기에 혈안이 되고
급기야 한표에 몇만원을 마다 않는 객기를 부린 것이 사실 아니었나.

더가까이 보면 자타 다를것 없는 그런 풍토때문에 힘없는 야당보다는
힘세고 당선가능성 높은 여당쪽에 월등 유리한 모금기회, 자금살포
개연성이 컸던 사실 또한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이런 토양에서 92년 대선자금 공개를 놓고 야당의 목소리가 큰 반면
여당이 수세인 것은 딱히 변고랄 것도 없다.

문제는 이제부터 각자의 발상과 선택이다.

만일 여력이 있는 최후까지 버티다가 아무 방도가 없을 때 당하면
그뿐이라고 한다면 너무 한국적 숙명론이다.

그 뒤에 오는 것도 엄청난 대가의 지불이다.

그러나 모든 당사자가 조금만 시야를 넓히고 안목을 길게 잡는다면 모두에
공통이익이 되는 타협점은 반드시 있다.

다만 그것은 정치권에 국한한 시야나 안목이어선 안되고 국민정서를
포용하는 타당성을 지녀야 그속에 시대를 이끄는 생명력이 있고 활력이
솟는다.

좀더 현실적으로, 더이상 신한국당이나 청와대가 애달픈 몸짓으로
국민의 동정같은 것을 모으려는 신파적 전술에 매달린다면 계속집권
전망은 어둡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것이 이미 불거져 나왔고,가면 갈수록 일반의
의혹을 사실이상으로 부풀리는 역효과만 더할 뿐이다.

그렇다고 야당은 별수인가.

한마디로 오십보 백보라고 보는 것이 말하기 편하고 듣기에도 후련하다.

천하 철면피 한보의 정태수(정태수)씨가 마치 "내돈 안 받은자 어디
있거든 돌 던져 봐라"는듯 당당한 태도를 취한 것을 보고 국민은 이심전심
아픔을 맛봤다.

너무 허송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여-야 짜고 뚜껑을 덮는 것이 아니라 한발씩 내디뎌 고비용선거를 당장
이번 대선부터 개선하는데 협력해야 한다.

거기 "돈 싸가지고 와야 표몰아 주겠다"는 망국적 관행의 발본이
선결과제임은 물론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