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채가 1천억달러가 넘는데 올해들어 무역수지 적자는 두달만에
55억달러에 이르렀다.

경제정책을 다루는 일각에서는 무역수지 적자가 악화된 원인을 수출단가의
하락과 엔화 약세로 보고 총수요억제를 통해 수입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돌아가는 경제구조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최근 수입억제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유럽연합(EU)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일부 주한 외국 공관들은 한국정부의 개입여부를 확인하는 등 대응책마련에
나섰다는 보도도 있다.

지난해 사치성 소비재 수입액이 21억달러나 되었다니 우리사회의
소비행태에도 문제는 있다.

할수만 있다면 국민 모두가 불요불급한 소비를 줄이고 근검 절약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일 수 있다.

이보다 능동적인 대책은 산업의 경쟁력 강화인데, 문제는 우리의
경쟁력이 매년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대미 무역에서 한국은 39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는데, 우리의
경쟁상대인 일본은 4백77억달러, 중국은 3백95억달러, 대만은 1백15억달러의
흑자를 올렸다.

일본은 엔화 약세와 기술이 월등해서, 중국은 노임이 싸서 그렇다 치고
대만이 미국시장에서 우리와 1백50억달러 이상의 수지차이를 낼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이나 품질의 우위로 인한 것인가,인건비가 낮기 때문인가.

분명한 사실은 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환경변화나 불황에 대한 대처능력은 중소기업이 월등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경쟁력 약화현상의 원인으로 흔히 고비용-저효율을 꼽지만 이는
경쟁기업에 비해 낮은 생산성, 높은 원가, 낮은 품질과 서비스,
긴 조달기간, 납기지연 등에 기인된 것으로 궁극적으로 경영력과 기술력,
그리고 행정-통치력 열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얼마전 품질경영문제를 논의하던 심포지엄에서 한 토론자가 "사장이
품질개선에 매달리는 시간에 로비를 하면 그보다 큰 과실을 딸 수 있는
현실이 우리 산업에서 품질관리가 제대로 안되는 이유"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경영자가 정도경영을 할수 있는 풍토와 꾸준히 개선하려는 경영자의
자세가 아쉽다.

은행경영의 자주성이 주어졌는데도 금융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정부의 간섭을 덜 받는 신생 은행이나 외국은행들은 부실채권이 적고
경영실적도 좋다는 점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경쟁할 수 있는 풍토이다.

기업경쟁의 승리자가 되려면 전략과 경영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이는
경영자의 경영능력과 직결된다.

기업의 경쟁력을 논의할 때 흔히 가격경쟁력이 지목되고 이는 원가절감이나
생산성향상에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생산성에 의해서는 20% 정도만이 해결될
뿐 대부분의 경쟁력은 기술과 전략에 의해서 좌우된다.

막강한 일본산업의 경쟁력은 기술개발과 생산전략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그들은 기술과 전략을 주축으로 관리와 현장의 지속적인
개선활동을 전개하여 부가가치 창출에 주력해 왔다.

오늘날 대다수 성공적인 현대 기업들은 혁신과 지속적인 개선을 거듭하여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나아가 국제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혁신이 도약적이라면 개선은 점진적인 어프로치라 할수 있다.

혁신에는 기술혁신 뿐만 아니라 경영혁신 조직혁신 제품혁신 자원혁신
공정혁신 생산혁신 유통혁신 등 모든 분야의 혁신이 망라되는데, 이를 위해
많은 투자와 위험이 수반되므로 기술력과 자본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혁신보다는 지속적인 개선에 많은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

개선에는 원가절감을 비롯한 원자재 에너지 공정 작업 관리 시간 등의
개선이 망라되는 것으로 우리산업은 일차적으로 개선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에 매진해야 한다.

혁신과 개선의 원동력은 기술력과 경영력으로서 산업내지 경영혁신의
주체는 경영자와 기술자라 할수 있다.

우리 산업에서 전문경영자는 얼마나 되며 그들은 소신껏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는가.

작년초 보도자료에 따르면 상장회사의 대표이사 가운데 30대가 29명으로
이 가운데 한사람만이 2세나 족벌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주요 그룹의 차세대 경영인으로 떠오르는 30대임원 32명중
비계열은 5명에 불과했다.

경영자의 세대교체를 조급히 서두르지 말고 그가 경영자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연륜을 쌓은 다음에 단계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때에 귀중한 경영 인적자원의 활용과 구성원들의 안정된 사회활동
등에서 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산업의 경쟁력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노사화합과 산업 인프라의
구축이다.

좋은 기술과 시설을 갖추었더라도 구성원들의 참여와 노력이 없이는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

그러려면 노사가 단합되어야 하는데 일부 산업현장에서는 마찰이
반복되고 있음을 본다.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가 있는 것이고 근로자가 건강해야 기업도
건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이 모를리 없을 터인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리고 기업이 할수 없는 기술개발, 사회간접자본 구축, 산업의 계열화및
전문화, 자금력의 충실화 등 산업인프라 구축은 산업경쟁력의 필수요소이다.

이들은 경쟁우위요소로 지목되는 가격-원가 품질 시간 유연성 등의
상승요인이라는 점에서 긴요하다.

앞으로 정부의 행정-통치는 기업활동을 자율적으로 펴나갈수 있도록
지원하는 입장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영자가 소신껏 혼신을 다하여 신명나게 일하고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나 간섭, 원가의
부담을 주는 부정 부조리, 준조세요인 등을 말끔히 치워 주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