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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프리즘] 앤스로픽이 연 AI 판도라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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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400조 증발시킨 위력
    일하는 AI시대의 불안감

    김형호 편집국 부국장
    [이슈프리즘] 앤스로픽이 연 AI 판도라 상자
    지난 2월 9일 열린 미국 슈퍼볼 광고판에 이런 문구가 떴다. “광고가 AI로 온다. 하지만 클로드에는 오지 않는다.” 오픈AI가 무료 서비스에 광고를 도입한 직후였다. 앤스로픽(클로드)의 조롱은 정확히 그 급소를 찔렀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정직하지 않은 광고”라며 발끈했지만, 시장은 앤스로픽의 반격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봤다.

    지난달 3일 뉴욕증시에선 하루 만에 400조원이 증발했다. 전달 앤스로픽이 출시한 ‘클로드 코워크’가 준 충격이었다. 법률정보 절대 강자인 톰슨로이터 주가가 15.83% 폭락했다. RELX는 14%, 리걸줌 주가는 20% 가까이 떨어졌다. 월스트리트는 이 사태를 ‘사스포칼립스’, 소프트웨어 서비스 산업의 종말이라고 불렀다.

    시장이 공포에 떤 이유는 단순하다. 클로드 코워크가 더 좋은 소프트웨어여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세계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 도구는 AI가 구글 드라이브, 지메일, 세일즈포스를 직접 읽고 쓰며 계약서를 검토하고 재무 모델을 만든다. 사용자는 더 이상 개별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를 열 이유가 없어진다.

    오픈AI는 ‘말하는 AI’의 세계를 지배했다. 2022년 말 챗GPT가 등장한 이후 AI는 질문하면 답하는 도구로 정의됐다. 하지만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챗GPT 시장점유율은 지난 1년간 86%에서 64%로 떨어졌다. 오픈AI는 영상, 검색, 하드웨어, 광고, 심지어 성인 콘텐츠까지 확장했다. 올해 현금 소각 규모는 170억달러로 예상된다. 흑자 전환은 2030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앤스로픽은 정반대 길을 걸었다. 첫째, 소비자 대신 기업을 택했다. 오픈AI가 수억 명의 사용자를 쫓을 때 포천 10대 기업 중 여덟 곳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매출의 80%가 기업에서 나온다. 둘째, ‘말하는 AI’ 대신 ‘일하는 AI’에 공을 들였다. 개발자 도구인 클로드 코드는 스포티파이의 엔지니어링 시간을 90% 단축했다. 코워크도 클로드 코드가 10일 만에 개발했다. 윤리를 제약이 아니라 경쟁력으로 삼은 것도 차별점이다. 오픈AI와 달리 훈련 단계부터 윤리 원칙을 모델에 내재화했다. ‘헌법적 AI’다. 금융·법률·의료처럼 규제가 엄격한 산업에서 AI 도입의 최대 장벽은 성능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안전은 영업력이 됐다. 연매출 10억달러 돌파 이후 성장 속도를 비교하면 앤스로픽은 연간 10배, 오픈AI는 3.4배다. 앤스로픽의 현재 연환산 매출은 140억달러다. 2027년 흑자 전환이 목표다. 기업 가치는 3800억달러로 지난해 9월 대비 두 배가 됐다.

    두 기업의 차이는 정치에서도 드러났다. 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연방기관에 앤스로픽 기술 사용 중단을 명령했다. 국방부는 앤스로픽을 ‘공급망 안보 위협’으로 지정했다. 중국 화웨이에 적용하던 조치를 미국 기업에 처음 내린 것이다. 앤스로픽이 대규모 국내 감시와 자율 살상 무기에 클로드를 쓸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서다.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양심상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앤스로픽이 쫓겨난 날 오픈AI는 국방부와 계약을 맺었다. 앤스로픽이 싸워 잃은 것을 오픈AI는 협상으로 얻었다.

    일하는 AI는 계약을 검토하고, 코드를 배포하고, 이메일을 보내며, 군사 작전을 지원한다. 그렇다면 그 판단은 누가 하고,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 400조원이 증발한 하루는 공포였다. 그러나 더 큰 공포는 따로 있다. 그 힘을 다룰 사회적·정치적 시스템이 아직 미성숙하다는 것이다. 앤스로픽이 연 판도라의 상자에서 빠져나온 건 AI의 능력만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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