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이 부도나기전 국회 상임위에서 유일하게 한보와 권력핵심과의
관계를 따진 것으로 알려진 국민회의 장성원 의원은 26일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증거서류를 제시하며 한보그룹의 특혜대출 사례를 지적, 관심을
끌었다.

장의원은 "한보철강의 산업은행 외화대출 담당 실무자로 일했던 한 간부가
전한 얘기"라고 전제, 지난 92년 12월 산업은행이 한보로의 첫 외화대출
(1천9백84만달러)은 한보철강 정보근 대표이사와 연대보증인 정태수 명의로
돼있는 각서 한장만을 받고 집행됐다고 주장했다.

장의원이 밟힌 한보특혜 대출과정은 이렇다.

한보철강은 92년초부터 제철소 건설을 준비하면서 일본의 고베철강 고요산업
및 독일의 SMS사와 기술및 제조설비 도입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외화대출을
받기가 막막했다.

낙담해있던 정태수 총회장은 대통령선거(92년 12월18일) 바로 다음날 김영삼
당선자로부터 "산업은행 외화대출이 결정됐으니 대출계약 준비를 하라"는
낭보를 받았다.

산업은행의 외화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서류를 만드는데만도 3~4개월이
걸리는 것이 통례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보그룹은 사전기술검토 타당성
경제성 등이 생략된채 열흘만에 대출을 받았다.

장의원은 산업은행의 첫 외화대출과 관련된 기술검토서의 사본과 각서를
증거서류로 제시하며 특혜대출 의혹을 제기했다.

산업은행 부총재보의 사인이 있는 기술검토서는 한보철강이 93년 1월6일에
산업은행에 의뢰했고 기술검토가 끝나 검토서가 작성된 것이 93년 1월30일
이었다.

대출전에 선행돼야 할 기술검토가 대출 한달후에야 형식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더욱이 이 보고서는 도입예정 제조설비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도 산업은행은 1차대출에 이어 93년부터 2년간 4차례에 걸쳐 모두
4억2천7백만달러의 외화대출과 3천5백70억원을 한보철강에 대출했다.

장의원은 "이런 대출이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겠느냐"며 "청와대 고위층 등
외압의 실체 사실여부를 밝히라"고 추궁했다.

<김호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