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11일 신한국당 홍인길.정재철의원을 구속한데 이어 12일
신한국당 황병태의원 김우석내무부장관 국민회의 권노갑의원을 소환하면서
한보사건 수사가 주내 마무리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최병국 중수부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상임위(재경위 또는 통산)소속
의원들중에서 추가소환자가 몇명더 있겠지만 큰 기대를 걸 만한 인물들은
아니다"며 "정태수총회장에 대한 기소(19일)에 앞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
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수 검찰총장도 이에 앞서 지난 11일 홍인길.정재철의원에 대한 영장을
청구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수사가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며 "앞으로 소환될 정치권 인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람들로
몇명 되지 않을 것"이라며 조기종결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들의 말과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민주계 핵심인사들인
홍.황의원, 김장관이 이번 사건의 정점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총무수석 출신인 홍의원과 국회재경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의원이
앞으로는 한보철강에 돈을 계속대 주라고 은행들에게 입김을 불어넣면서
뒤로는 정태수총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구도다.

여기에다 김영삼대통령의 민자당 최고위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김장관이
외압세력에 합류, 건교부장관시절 한보철강의 각종 민원업무에 특혜를
봐주는 "지원세력"까지 겸했다는 설명이다.

이와함께 정의원은 한보와 야당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했고 정의원을
통해 정총회장의 돈을 받은 권의원은 휘하 의원들의 대한보 공세를 진화
시켜 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밑그림이 국민들에게 어느정도 설득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한보에 돈이 본격적으로 들어간 94년 당시의 은행대출 경위를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밝혀낸 홍의원의 범죄 사실은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채 1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산업.제일.외환은행등 행장들에게 대출압력을 넣고 그
대가로 정태수총회장으로 부터 8억원을 받았다는 점 뿐이다.

황의원의 경우도 15대 국회이후 재경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에 이 역시
지난해 4월 이전의 특혜대출과는 연관이 없다.

따라서 한보철강에 대한 여신규모와 내역에 비춰볼때 홍의원등이 돈을
받은 시점 이전에는 "도대체 누구였는가"라는 의문이 머리를 내민다.

이렇게 볼때 검찰이 14일께 추가소환할 정치인들중에는 이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14대 재경위 소속 의원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검찰이 이같은 의문점을 해소한다 하더라도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지금까지 검찰청사에 모습을 나타낸 정치인들의 실력만으로 5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출이 일사천리로 이뤄질 수 있었겠는냐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 한해의 여신만 해도 2조원이 넘는 규모인데 몇몇 의원의
입김만으로 4개 거래은행이 순순히 거액대출에 동참했다고 보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게다가 당진제철소의 인허가와 은행대출 승인업무에 연관된 공무원에 대한
수사가 전무한 것도 의문이다.

최부장은 "김장관도 관료라기 보다는 정치인으로 봐야 한다"며 "공직자에
대해서는 정치인에 비해 2배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얻어낸게
없고 앞으로도 크게 진전되지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시점에서 일단 여론의 동향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는 눈치다.

신한국당 중진 3명, 현직 장관 1명, 국민회의 최고위급 1명등을 "대어"로
제시하며 사태추이를 지켜 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여론의 향방에 따라 "보다 거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정치적 부담감등을 고려할 때 검찰수사의 상한선은 대략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