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다는 우화가 있다.

여러명의 눈 먼 사람이 거대한 코끼리를 손으로 만져보고 각각 그 모습을
말해보니 어떤 이는 우뚝 솟은 기둥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무슨 소리냐 긴
몽둥이 같다고 했다는 얘기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볼 수 있는 시각으로만 사물을 판단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얘기다.

지난 연말 군사작전을 연상케 하는 새벽의 날치기통과로 촉발된 "노동법
사태"를 놓고 여야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가 다소 낡은 듯한 이런 우화를
생각나게 한다.

우선 여당을 보자.

3공화국은 물론이고 5,6공을 거치면서 여당의 날치기 수법에 일방적으로
당해온 당시 야당의 일부지도자들이 최고위층을 이루고 있는 현재의 여당은
그 어느 여당보다 효과적으로 문제가 된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국회의장을 감금하고 의사당을 봉쇄한 야당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의회
주의자임을 자처해온 여당이 취한 행동은 그러나 최고통치권자가 일부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불러왔다.

그들의 눈에는 코끼리의 발은 물론 귀나 꼬리도 보이지 않은 셈이다.

그들이 본 것은 오직 거대한 코끼리의 몸집이고 그것이 쓰러지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만 생각했다고 할 수 있다.

여권의 모든 인사가 그러했다고는 할 수 없다.

사실 문제가 된 노동법개정은 한국의 노사관계가 갈등의 지속이 아니라
화합의 시대로 발전해야 된다는 노사관계개혁의 관점에서 추진됐다.

노동개혁위원회가 발족되고 공익위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등 작품이 될
것으로 보였던 노동법개정은 그러나 최종성안과정에서 대통령 스스로 영수
회담에서 잘못을 인정한 부분 등 개혁의 참뜻을 흐리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끼어들었다.

게다가 지나간 정권의 행태를 연상케하는 처리절차과정까지 곁들여져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이다.

모든 문제가 영수회담이 열려야 해결된다는 정치권의 권위주의적 논리는
청산돼야할 과제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여당이 완강한 자세에서 물러나
회담이 열렸고 최고통치권자는 사실상 재논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걸림돌은 여전하다.

야당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의 시각이 편향돼있기는 마찬가지다.

회담을 끝내고 나온 두 야당총재의 처음 반응이 서로 달랐던 점이 그것을
반증한다.

국민회의는 안기부법의 개정가능성에 반색을 한 셈이고 자민련은 탈당
사태에 대한 신한국당의 작전설 일축에 발끈한 모습이다.

탈당자가 속출할 경우 당의 존립여부조차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의
반증이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의 존립이지 현정권에서 멀어진 민심의 동향과
그 이유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3사람의 눈 먼 사람이 "코끼리"를 어루 만지며 어떤 형태를 상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시각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여야를 불문하고 요즈음의 유일한 화두는 다가올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일
뿐이다.

최고의 관심사는 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표를 모을 것인가이다.

여당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노동관계법을 처리한 것도 경제를 살려야
표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야당은 여당의 무리수를 기회삼아 정국주도권을 잡고 이를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얻겠다는 전략이다.

목표는 같지만 방법은 다른 셈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 것인가.

분명히 있다.

여야가 국회에서 만나 각자가 그리고 있는 모습을 내놓고 진정으로 이
시점에서 나라의 안정과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것이다.

당리당략을 앞세우기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 어렵다.

그러나 여야 모두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여당은 일단 물고를 텃으니 들어오라고만 하고 상대방의 완정한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사태초기에는 민심의 동향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던 야당이
뒤늦게 초강경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하고 나서 과연 대화가 가능하다고 그들은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야 모두가 눈을 떠야 한다.

눈을 똑바로 뜨고 어려운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얻기를 바라는 표를 던질 국민들은 눈을 뜨고 있다.

코끼리의 모습을 바로 보고 있는 이들은 여야정치인들이 눈을 뜨기를
바라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위해서도 그렇고 고개숙인 아버지를 줄이기 위해서도 그렇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