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상이란 일본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중의 하나로 1934년
분게이슈 주사(문예춘추사)가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리기 위해
재정한 것이다.

아쿠타가와상은 35년부터 매년 상.하반기로 나눠 1월과 7월 2회 시상하며
재일교포가 수상한 것은 이회성씨와 고이양지씨에 이어 세번째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는 도쿄(동경)대학 영문과 재학중 교수
나쓰메 소세키 문하에 들어가 기쿠치칸, 구메 마사오등과 "신사조"의 동인이
됐고 단편소설 "코"와 "고구마죽"등으로 문단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 작품으로 일세를 풍미했으나 만년에 시대적
동향에 적응치 못하고 회의불안 호조에 빠져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자살
하고 만다.

대표작으로 "나생문" "하동" "서방인"등이 있다.

문춘사주 기쿠치는 친구이자 경쟁관계에 있던 아쿠타가와를 기념하기
위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당초 이 상은 순수문학을 대상으로 삼았었다.

대중문학에 수여되는 나오키상과는 성격상 구별됐었으나 패전후 중간소설이
유행하면서 다소 구별하기 어려운 현상도 생겨났다.

제1회 수상작은 이시카와 다쓰조의 "창맹이었다.

재일교포 여성작가 유미리(28)씨가 지난 16일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씨는 작년에도 단편집 "풀하우스"로 이즈미 교카문학상.노마문예신인상
등을 수상했고 95.96년엔 "콩나물"등으로 두번이나 아쿠타가와상후보에
올랐었다.

그녀의 수상작 "가족시네마"는 부모의 이혼으로 여동생 남동생 모두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던 주인공이 "가족"을 테마로 한 영화촬영을 계기로
재회한다는 내용이다.

재일동포 2세인 유씨는 어렸을때 부모의 별거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분가해 살았고 학창시절 자살미수로 정학처분을 받은 일도 있다.

요코하마 교리쓰 고교 중퇴후 연기자 생활을 하다 극단 "청춘 5월당"을
주재하면서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생선의 축세"로 기시다 희곡상을 타기도
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품었던 다른사람과의 사이에 틈이 있다는 생각은
수상한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 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로 대성하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