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들은 올겨울이 어느해보다 춥다.

명예퇴직과 조기퇴직의 찬바람에 이어진 대규모 감원설로 직장인들의 목은
어느새 자라목이 돼있다.

"몇명을 자른다더라" "누구 누구가 옷을 벗는다더라"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밤잠까지 설치게 만든다.

특히 각 기업들이 불황 극복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는 경비절감운동은
샐러리맨들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한다.

조직 슬림화와 각종 지원경비 삭감으로 샐러리맨들의 기가 눈에 띄게 꺾이고
있는 것.

SKC나 한국유리 미원 등에서 실시한 대량 감원을 언제까지나 남의 일로만
생각할수 없게 됐다.

또 선경건설이 최근 단행한 정기인사에서 부사장을 3명에서 2명으로 줄인
것이나 동아건설이 주택사업 총괄본부장을 부사장급에서 전무급으로 교체하는
등 기업이 임직원의 수와 직급을 조정한 사례도 직장인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더구나 각 기업들이 감량경영차원에서 허리띠 졸라매기를 본격화해 샐러리맨
들의 "한파 체감온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삼성생명은 직원들 개개인에게 지급했던 핸드폰을 거둬들이고 과에 하나씩만
배급했다.

꼭 필요할 때만 쓰라는 조건마저 달았다.

LG그룹은 부과장급 이상에 지급되던 주차비를 완전히 없앴다.

기름값으로 주던 차량유지비도 절반으로 삭감했다.

SKC는 내년 운영경비를 올해보다 무조건 20% 줄였다.

전화도 개인용도로 쓴 경우에는 통화료를 사원들이 부담토록 했다.

기업들은 하다못해 신년 달력도 작년보다 최고 절반으로 줄였다.

말 그대로 "살을 에는 찬바람이 쌩쌩 돈다"(LG전자 N부장) 이 정도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LG칼텍스정유처럼 올 연말 업적급을 축소해 임금을 줄이기로 한 기업도 꽤
있다.

또 대부분의 기업들이 내년부터는 종업원에 대한 복지정책을 대폭 축소할
움직임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본인을 포함한 가족에게 모든 진료비를 지급해주던 의료
보장을 축소키로 결정한 상태다.

LG그룹이나 대우 현대그룹 등 대기업들도 복지정책을 대폭 하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돈이 많이 드니까 올해 아픈데를 다 고치자"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회사의 긴축경영은 가정의 내핍생활로 이어지고 있다.

LG전자 P과장은 최근 그동안 몰고 다니던 승용차를 팔았다.

기름값과 주차비 지원이 없어진 탓에 아무래도 차를 끌고 다니기가 부담
스럽기 때문이다.

또 S그룹 L과장은 딸(초등학교 3학년)에게 피아노학원을 그만 다니도록
했다.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 두 군데를 다녔는데 회사에서 이런 저런 지원을
줄이면 아무래도 생활비가 너무 축날 것 같아서다.

한창 시끄러울 송년회 철이지만 요즘 각 기업이 조용하기만 한 것도 이런
분위기 탓이다.

회식도 간단하게 밥이나 먹고 끝내는 게 대부분이다.

회사에서도 회식 행사를 줄이고 있다.

광고 대행사 코래드는 한달에 한번씩 열던 "호프데이" 행사를 3개월 단위로
축소키로 했다.

진로는 지하식당에서 격주로 직원끼리 술을 나누는 "진로광장"을 아예
열지 않고 있다.

"열어봤자 이런 분위기에서 먹고 마실 기분이 나겠느냐"는게 중간간부의
얘기다.

샐러리맨들은 그렇다고 회사측에 사기를 올려달라고 요구할수도 없는 형편
이다.

불황의 그늘이 워낙 길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잘알고 있어 혼자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샐러리맨들의 올 겨울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 조주현.김준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