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사 김모대리는 일주일에 한두번쯤 자청해 야근을 한다.

일감이 밀려서가 아니다.

동료들이 퇴근한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 정보의 바다를 누비기
위해서다.

언뜻보면 그가 정보화시대에 앞장서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가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정보들이 회사업무와 상관이 없는 것이 문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외국여인의 야한 사진을 이방저방에서 찾아보거나
실감나는 게임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근무시간중에 간간이 틈을 내 즐기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본격적으로
탐닉하기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곤 하는 것.

이때문에 회사는 2중의 부담을 진다.

김대리가 인터넷게임을 즐기며 보내도록 야근비를 따로 주고 통신비까지
물어야 한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쓸데없는 추가비용이 든 것이다.

밤새워 게임을 하느라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은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미 닐슨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회사원들의 66%가 근무중에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회사가 전화료를 지불하는 점을 이용, 회사통신망을 자신의
오락수단으로 도용한다는게 연구소측의 분석이다.

또 IDC가 최근 미 5백개 회사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직원들의
70%가 음란물 등 업무에 불필요한 오락성 정보검색을 위해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컴퓨터가 업무효율을 떨어뜨리는 것은 근무시간에 오락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능이 필요이상으로 뛰어난 컴퓨터시스템을 들여와 주요기능이 활용되지
않는 부작용이 생긴다.

결국 구입비가 낭비되는 셈.

또 구모델이어서 PC가 작동되는데 시간을 잡아먹는 것도 돈으로 계산하면
제법 된다는 지적이다.

상장 무역회사인 S상사는 최근 사내 PC의 운영체계(OS)를 윈도 95로
교체했다.

이에따라 직원들은 윈도 3.1에도 채 익숙해지기 전에 더 복잡해진 윈도
95를 배우느라 애를 먹고 있다.

문제는 윈도 95가 기능이 뛰어나고 보기에 좋지만 일단 고장이면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도스 시대에 웬만한 고장은 스스로 처리했던 컴퓨터마니아들조차 윈도95가
설치된 PC에 메스를 들이대다가 오히려 고장을 악화시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때문에 S사 전산실은 본연의 업무인 시스템 개발 및 관리보다는
직원들의 컴퓨터 유지보수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이 회사는 최근 고장수리 전담직원 2명을 채용했을 정도.

고기능 멀티미디어 PC가 사무실 책상마다 오르면서 "예쁜 서류"를
요구하는 경향이 생긴 것도 업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제 간단한 서류에도 도표와 그래픽은 필수가 됐다.

실제 서류를 작성하는 시간보다 서류를 꾸미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L사 이주임)

멀티미디어 PC로 한껏 멋을 부린 서류가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위해 들이는 과도한 시간과 정력은 분명 "과소비"라고 입을 모은다.

컴퓨터가 회사 업무의 필수도구로 정착됨에 따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1인
1대의 PC환경을 갖추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직원들은 물론 간부 경영자 할것없이 컴퓨터를 모르면 정보시대의 문맹인
"컴맹" 취급을 받는다.

S사의 전산화담당임원은 이와관련해 "컴퓨터도 잘쓰면 약이지만 못쓰면
오히려 병이 된다"고 조언했다.

첨단의 컴퓨터가 오히려 생산성 저하의 주범이 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유병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