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주제의 한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촉발된 요즘의 성윤리 논쟁은
처음 듣고 충격받을 새삼스런 명제는 아니다.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거나 별스럽지 않아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뿌리깊고 풀기 어려운 우리들 모두의 사회문제라는 평소의 깊은 인식
때문이다.

"애인"만 해도 그렇다.

기혼 남녀의 혼외 이성교제가 일종의 드물지 않은 풍류여서 그것을
경계하는 뜻이 컸다는 프로 제작측의 변이 국감장에서 얼만큼 통할
정도로 이 사회가 엄청 변질돼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우선 성도덕을 논하면서 확실히 해둘것이 있다.

여권신장과의 상관관계다.

인류사에 있어 여성해방이 최대 주류의 하나일 만큼, 특히 이 땅에서
남존여비가치관의 탈피는 현저히 진전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 나머지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과 인식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핵심의 하나는 성도덕이나 순결이 가치면에서 여권과 혼동될
위험이다.

그래서 산업화 도시화 30여년 사이에 정면에서 이 문제를 논의 토론하지
못한 아이러니부터 우리는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선거에서 여성표에 약한 정치의 경우가 더 그랬다.

그러나 보자.

이치를 따져 가치론으로 접근할때 여성의 권리와 성윤리와는
개념상 결코 혼동할 성질이 아닌 별개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

오히려 남녀의 지위가 대등하면 할수록 남녀동등과 성윤리의 동시제고에
보완적이고 기초가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마침 지난 22일 아산복지재단의 사회윤리 심포지엄이 열려 성윤리문제에
여러 각도로 조명을 했다.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정면에서 참여할수 있을만큼
성윤리추락의 원인분석이 충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시 거기엔 연구자 자신들이 반여권 오해를 꺼리는 심리가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그러나 문제를 결정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주범은 기업과 매스컴의
주부에 집중된 판촉, 그리고 말초신경 자극의 패미니즘 상업주의의
동시 반영이다.

온라인제 이후 가계소득 처분권을 독점하다시피 한 주부,그들 모성의
우상이 된 자녀들이야말로 다름아닌 이 시대의 제왕인 것이다.

여성과 젊은이 대상의 상품-용역 판촉물은 물론이고 매스컴 자체의
상품인 프로들도 몽땅 이들의 눈 귀를 끄는 일념에서 무한경쟁에
몰가치로 뛰어든지 이미 오래다.

거기 겹친 것이 청소년 우상화다.

10대를 향한 경박-저질화 경쟁도 모자라 토크쇼 오락프로, 심지어
르포까지 미모-노출만이 유일 출연기준이니 이 사회에선 연륜 전통
권위가 이미 무색하다.

시장과 매스컴만이 아니다.

이젠 상부구조인 정치 문화, 하부구조인 시장 사회 전체가 하나같이
천박하고 말초신경에 매달리는 섹스와 폭력으로 흠뻑 젖어간다.

이러다간 경제활성이다, 민주화다, OECD 가입이다가 문제 아니다.

정치와 사회교사인 언론 교육 종교인들이 깊은 연대감으로 나서서
면역결핍증에 감염되고 있는 이 사회의 구제에 더 늦기 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