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훈 <명지대 교수 / 경제학>

우리경제가 수출부진 경기하락 물가불안 등의 3중고에 직면해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정부도 이를 인식해 "9.3 경제종합대책"을 내놓게 되었다.

작년 10월이후 안정세에있던 금리가 올 4월들어 큰폭으로 하락,
저물가-저금리-저성장으로 경제의 체질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기대가 컸으나
5월이후 다시 크게 상승했고 물가도 이미 연간 목표치 4.5%를 오르내리는등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의 활력회복을 위한 조치로서 투자신탁에 MMF, 종합금융회사에
중소기업의 CP나 진성어음을 투자대상으로 하는 신종 CMA 등의 신상품
도입을 제시함으로써 고금리를 하향안정시키고자 하였다.

금리안정화의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는 금리수준이 높은 이유를 근본적인
원인과 최근의 현상적인 원인에 대해 구분하여 보는 것이 필요하며,
이에따라 금리하향안정화의 올바른 대처방안도 나올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금리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실질금리 수준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예상을 들수있다.

실질금리는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는데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7%대로서 2~4%대의 선진국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는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아직도 높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물가수준이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고는
하나 선진국과 비교할때 여전히 높은 편이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상존하고 있다고 파악된다.

그밖의 구조적인 요인으로 낮은 금융중개효율과 기업의 높은 차입의존도를
들수 있다.

다음으로 최근의 금리급등의 현상적 원인을 찾아보면 먼저 반도체
가격하락 등에 따른 수출부진과 기업의 재고증가로 자금의 원활한 순환이
막히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을 지적할수
있다.

이와같은 실물적 경기순환적 요인 이외에 금융적 요인으로는 신탁제도
개편으로 주로 유가증권투자로 운영되던 신탁자금이 대출로 운영되는
은행의 일반자금으로 이전되어 유가증권 수요가 줄어듦에따라 유가증권
가격하락및 금리상승을 야기했다는 점을 들수 있다.

그밖에 국제자금시장에서의 자금조달 여건악화도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같이 고금리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현상적인 원인이 분리될
수 있다면 각각에 대해 적절한 금리안정방안을 모색해 볼수 있다.

먼저 잠재성장률을 보면 장기적으로 서서히 떨어지면서 저성장시대로의
진입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것이 금리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물론 저성장시대를 맞아 성장의 내용을 견실화하기 위한 기술혁신
조직혁신 등 경쟁력제고 노력은 꾸준히 계속돼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물가안정이 고금리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치유중의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남게 된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정책의 최우선방향으로 천명한것은 비록 이것이
진부하다는 일부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올바른 조치로 평가된다.

금융중개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금융기관들의 중소기업
신용평가제도를 정착시켜 신용도가 높은 유망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면
지속적으로 저렴한 이자로 자금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이 크다는 사실 때문에 우량 중소기업을 선별하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은 중소기업과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여 신용평가
비용도 낮춰가면서 유망 중소기업에 우대금리를 적용해가는 방안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현상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것 중에서 신탁제도개편에 따른
자금이전에서 야기된 금리상승현상은 자금이전이 거의 완결돼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서서히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가 신금융상품도입으로 유가증권수요를 확충시키고
이에 따라 금리상승을 억제하고자 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보조적인
수단의 의미밖에 부여할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물적-경기순환적 요인에 의한 금리상승에 대해 적극적인
경기부양조치를 취하지 않는것은 이것이 물가안정의 기반만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관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현상적인 원인의 치유가 근본적인 원인치유보다 우선할수 없는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자금조달여건을 개선하기위해 신용대출이
많은 금융기관에 해외차입상의 우대를 하겠다는 조치도 현상적인 원인치유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현상적 원인에 대한 제반조치들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물가안정 차원의 통화관리이다.

금리를 안정시키고 해외차입을 늘리기 위해서도 안정적인 통화관리는
선결과제이다.

신탁제도개편에 따른 은행권으로의 자금유입을 이유로 해서 목표치를
초과하여 17%대로 운영되고 있는 통화관리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자칫
물가안정 기반이 흔들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거론된 조치들의 효과는 결국 국민들이 얼마나 정책에대해
신뢰성을 갖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경제의 기본원리를 토대로 하여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만이
정책효과를 극대화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현상적인 상황에 너무 과민반응하지
않는 국민모두의 참을성(patience)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