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마야와 잉카문명, 삼바춤과 탱고, 축구에 열광하는 곳이라는 정도로
아는 사람은 많아도 칠레와 과테말라, 페루에 노벨상 수상자가 4명이나
있을 만큼 높은 문화수준을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우리나라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대륙은 그동안 지리적 거리 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80년대를 통하여 쿠데타와 군사독재 부패 빈곤 인권탄압
매년 수천% 이상 치솟는 물가,그리고 상환불능 상태의 엄청난 외채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점철된 중남미 제국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인상이
긍정적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정통성을 확보한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자유화 개방화 민영화 등으로 대표되는 각종 경제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최근 중남미 경제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90년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80년대에 비해 3배 가량 높아졌고
기록적인 물가상승률도 점차 낮아졌으며 96년에는 10%대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GDP의 절반 가까이 달했던 외채비율도 94년말부터 크게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며 지난해 수출이 30% 가까이 늘어나면서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던 무역수지도 흑자로 돌아섰다.

90년대 들어 민영화가 급격히 진전되면서 외국인 투자도 크게 늘어나
세계 총 국외직접투자 유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년대 후반의 5%에서
90년대들어 10% 수준으로 높아졌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만 보더라도 전력공급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전력회사가 맡고 있으며, 상수도는 프랑스의 리오네즈데조사,
전화는 스페인의 텔레포니카, 통근열차는 미국의 노던 벌링턴사, 인근 유료
고속도로는 스페인-아르헨티나 합작회사가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민영화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 3년간 평균 노동생산성은 5.5%로
여타 주요 이웃나라에 비해 두배나 늘어나고 있다.

인구 4억5,000만명에 수입규모 2,200억 달러에 달하고 있는 중남미는
시장으로서의 잠재력 또한 매우 높은 지역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7월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의 국가를 세계
10대 거대신흥시장의 하나로 선정한 바 있으며 세계은행은 중남미를 90년대
후반에 아시아 지역과 함께 세계 경제성장을 이끌어 갈 지역이 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9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산업화로 자본재와 시설재의 수요뿐만
아니라 사회간접자본 건설 수요도 크게 늘어나 연간 6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중남미 시장을 선점하려는 선진 각국의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김영삼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은 기회의 시장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중남미와의 경제외교를 확대하고 세일즈 외교에 국가원수가
직접 나섬으로써 각국과의 경쟁에서 뒤질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이 지역에 대한 진출이 활기를 띠기 시작, 수출과
현지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과테말라 등 카리브연안국을 중심으로 한 봉제공장, 삼성과 대우의
전자제품 공장을 비롯한 멕시코의 40여개 제조공장, 브라질의 삼성전자
공장, 아르헨티나의 LG전자 공장, 페루에 진출한 현대 대우 기아 등 자동차
3사,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한 대림과 사조 등의 수산업, 종합상사들을
중심으로 한 무역업 등 다양한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중남미의 관계는 EU는 물론 일본 중국
아세안 등에 비해서도 미미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중남미에 대한 수출이 급속히 신장되고 있다고는 하나 전체수출의
6%에도 못미치고 있으며 직접투자 또한 총 국외투자액의 3%에 불과한
실정이다.

더욱이 정치 문화의 교류는 상대적으로 미진한 상태에 있다.

오늘의 중남미는 부패한 군사 독재정권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자 이제 분명 새롭게 태어나고 있어 개혁이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와 개혁으로 사회정의가 구현됨에 따라 국민들 사이에도 강한
성취동기가 형성됨으로써 경제는 빠른 속도로 재기하고 있다.

일례로 과거 중남미의 점심문화는 패스트푸드점이 발붙일수 없을 정도로
느슨했으나 이제는 점심시간을 아끼기 위한 샐러리맨들로 중남미 도처의
맥도널드점이 일대 성업중일 정도로 근로자들 사이에 경쟁체질이 배어가고
있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온 김영삼대통령이 지구 저편에서 일고 있는
변화와 개혁의 현장을 직접 방문한다고 하는 것은 양지역에서 그간
공유해온 역사의 의미를 접목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각별하다 하겠다.

이번에 펼쳐질 중남미 정상외교는 그동안 멀게만 느껴지던 중남미
각국이 한국을 이해하고 신뢰하는 계기가 되게 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넘어 세계화 의지를 바탕으로 한 두터운 동반자 관계를 다지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