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천국을 꿈꾸는 처녀 삼총사.

남산 옛 영화진흥공사자리에는 영화에 "미친" 여자 셋이 산다.

전문영화기획홍보사 "젊은 기획".

단지 영화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뭉친 겁없는 처녀들의 아이디어 산실이다.

올해 3월 자본금 2,000만원으로 출범한 이 회사는 창업 3개월만에 매출총액
5,000만원을 기록하며 충무로의 새별로 떠올랐다.

처음 이들이 적금을 해약하고 유학비용을 털어 영화기획사를 차린다고
했을때 주위에선 "시집이나 가지. 뭐하러 그 고생을..."하며 말렸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부러워한다.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수 있어 기뻐요. 열심히 뛰다보니 일도 저절로
들어오고요"

기획파트를 맡고 있는 윤숙희씨(29)의 말이다.

대학 2년때 황기성사단에 찾아가 무작정 영화일을 하겠다고 떼를 쓰다
"졸업이나 하고 오라"는 충고(?)를 받았던 "끼"의 주인공.

기획사에서 "속천장지구" "레옹"등 30여편을 홍보하며 실력을 쌓았다.

5년간 영화전문잡지에서 일했던 채혜연씨(28)는 기자생활때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아 마당발로 통한다.

폭넓은 인맥과 뛰어난 홍보감각으로 젊은 기획의 얼굴마담역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희주씨(27)는 우진필름 지맥엔터프라이즈 등에서 잔뼈가 굵은 마케팅
전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음식남녀"등 50여편을 기획홍보했던 실력파다.

이들이 처음 홍보를 맡은 영화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랜드 앤
프리덤".

다소 무거운 작품이라 걱정했지만 이들은 특유의 젊은 끼를 발휘해 대학가
와 기업체 노조등의 호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성균관대와 경희대에서 가진 시사회에는 2,000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지금은 한국영화 "보스"의 홍보기획과 외화 "아기자기 파파"의 광고대행을
맡고 있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일을 꾸미고 있다.

영화제작과 외화수입 배급 광고 이벤트를 한데 묶는 기업형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좋은 영화를 "달콤하게" 전달할 마당을 마련하는 것.

그래서 준비한 것이 테마영화축제다.

"사랑" "음식" "춤"등을 주제로 한 영화제를 여는 것.

10월말께 첫 영화제를 개최하고 내년부터는 연 2회씩 정례화할 계획이다.

또 다른 꿈은 복합시네마타운 건설.

1층에 휴식공간과 영화감상기능을 겸한 시네마카페를 만들고 2층엔 영화
기획및 제작사무실, 3층엔 영화관련 도서와 영상자료를 집대성한 시네마
박물관을 설립할 생각이다.

현재 충무로에는 이같은 영화기획사가 20여군데 있다.

그러나 활발하게 움직이는 기획사는 10개사 정도.

업무특성상 여성인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느 분야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섬세한 감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작부문에도 참여하지만 상품을 가공하고 포장하는 마케팅분야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스크린"을 "돈"으로 전환시키는 연금술사의 역할이 이들 몫이다.

특히 여성관객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적"을 알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성기획자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을 찾아내는 세심함도 큰 무기.

똑같은 상품이라도 이들의 손에 따라 1주일짜리, 혹은 깜짝 놀랄만한 히트
상품이 되기도 한다.

이같은 재능때문에 여성 영화기획자들은 3,000억원 영화시장을 주름잡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기획의 역사는 짧다.

국내최초의 여성 영화기획자 채윤희씨(38.올댓시네마 대표)는 "86년부터
본격적인 "기획"개념이 도입됐다"며 "앞으로 이 분야의 성장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일이라는 게 워낙 들쭉날쭉하고 고용구조도 공개채용이 드물어
전문기획자로 성공하려는 여성들에겐 아직 벽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영화사 기획실이나 홍보팀에서 몇년간 근무하면서 업무감각를 익히고
실무차원의 인맥을 확보한다.

해외영화제에도 부지런히 참여해 국제마케팅기법을 배워야 한다.

매체홍보와 협찬사섭외 시사회준비 광고카피작성 이벤트작업등 온갖 분야의
노하우를 습득한 다음에야 "나도 할수 있다"는 배짱이 생긴다.

홀로서기를 고려하는 단계다.

이때부터 그동안 체득한 모든 승부수가 동원된다.

독립선언이후의 성패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정된다.

언제나 젊은 감각으로 "열려 있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