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이너 정석원씨.서른여섯의 소장 디자이너로 "엑스포디자인연구
소"라는 조그마한 CI전문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가 최근 "산뜻한
서울 만들기"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3년 강남구를 필두로 올해초 도봉구에 이르기까지 서울시
7개 구의 상징마크 공모에서 평균 1백대1의 경쟁을 뚫고 잇달아
당선,"구 상징마크 제작 7관왕"의 위업을 세운 것이 그의 자랑거리다.

"각 구청들이 요구하는 것을 바로 캐치해 낸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구청의 역사가 담긴 자료도 찾아보아야 하고 제
스스로 구민이라고 생각하는 애정도 필요합니다" 정씨의 솜씨로
"자랑스러운 심볼"을 갖게된 곳은 강남구,도봉구외에도 중구,강동구,구로구
,서대문구,광진구등이 있다.

대부분 청색이나 녹색의 바탕색에 타원형을 기본꼴로 한 이들 상징마크들은
남대문(중구),독립문(서대문구),아차산및 나루터(광진구),도봉산(도봉구)등
각 구의 대표적인 명승지를주제로 하고 있다.

특별한 유적이 없는 강남구는 한글 이니셜인 " "과 " "을 이용해
형상화했고 "해뜨는 강동,맑은 강동,푸른 강동"의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강동구는 해,산,강을 기본 아이템으로 삼았다.

정씨의 이같은 작업은 새로운 의미의 CI이다.

종전의 CI가 기업의 이미지 통합작업인 Coporate Identity을 뜻한다면
정씨는 도시의 이미지 통합작업을 뜻하는 City Identity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이미지 통합작업인 만큼 성패의 관건은 활용여부에
있습니다.

상징마크뿐만아니라 명함,봉투,팩시밀리.공문서 용지,깃발,명찰,모자,각종
표지판등 그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정씨의 희망은 최근
일부 구청에서 서서히 실현되고 있다.

강남구는 새로 까는 보도블록에 구상징마크를 새겨 넣고 있으며
구로구와 강동구는 택시.버스 승강장,쓰레기통,가판대,육교 현수막등으로까
지 활용폭을 넓히고 있다.

"시커먼 바탕색에 굵직굵직한 글자체를 박아 넣은 과거의 관공서
표지는 권의주의의 상징일 뿐입니다.

각 자치단체별로 자기의 얼굴을 가지려고 할 때비로소 "다가가는
행정"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련 공무원들이 "이왕이면 보기좋게"라는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서울대 응용미술과 출신인
정씨는 대학졸업후 10여년간 CI라는 한 우물만 파왔다.

첫 직장이었던 (주)대우에서 실무를 익혔고 대전 EXPO조직위디자인실장을
맡으면서 기획에도 눈을 떴다.

그 사이 1백여개 회사의 CI작업을 수주했지만 정씨의 캐리어에 가장
무게를 실어준 작품은 단연 민자당 로고가 첫 손에 꼽힌다.

89년 3당 합당으로 태어난 민자당 로고 공모의 당선으로 정씨는
후배,친구들로부터 "야합당의 상징을 만들었다"며 손가락질도 받았다지만
이로 인해 디자인계에 두각을 나타낸게 된 것도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디자인은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꿰뚫는 혜안에서
나온다"는 디자인 철학에 따라 정씨는 최근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을 공부하는등 자기계발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와함께 서울의 1백여개 관광명소에 대한 상징마크 작업에도 착수했으며
내달 중순에 마감되는 서울시 상징마크 공모에 도전하기 위한 준비작업도
한창 벌이고 있다.

정씨는 "진짜 해 보고 싶은 일은 곧 다가올 통일한국의 국가상징을
만들어 보는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