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서예사의 거목인 위창 오세창 전이 12일~4월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 열린다.

예술의전당이 88년부터 개최해온 "한국서예사 특별기획전"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회는 개화기, 일제 강점기, 6.25 등 근대 격동기를
초개처럼 살다간 위창선생의 삶의 서예작품을 통해 살폅본다는 취지를
띠고 있다.

출품작은 서예작품 70점, 전각실인 240여점, 그리고 인보 11책 등으로
위창의 탁월한 서법을 감상할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위광은 1864년 개화선각자이자 금석문의 대가인 오경석의 장남으로
서울에서 출생, 서예가, 미술사학자, 역관, 개화사상가, 언론인,
독립운동가 등으로 활약, 근대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본관은 해주, 자는 중명으로 중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8대에
걸친 역관가문의 환경에서 자라나 일찍이 한학을 접하며 사대부못지
않은 실력을 쌓아 16세에 역과에 합격했다.

그후 박문국 주사를 역임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어 한성주보 기자를
거쳐 만세보와 대한미보사장, 광복후 서울신문 초대사장을 지내며 국민
계몽활동에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일제식민통치에 항거하다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작품활동에 몰입한 것은 서화가의 격동기인 1920년대 이후 예술적
성숙기인 청.장년기를 사회활동으로 보낸 그는 가문에 전해오는 방대한
양의 고서화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정리, 금석문탁본, 전각에 대한 훈련을
통해 60년대이후 서예에 일가를 이루게 됐다.

위창예술의 특징은 무엇보다 전각에서 엿보인다 예서나 해.행초의
작품에서도 보이지만 이는 주로 간찰이나 금석문에 구사되는 정도로
전서에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눈으로 보는 조형의 현란함보다 표정없는 묵직한 필획구사에 무게를
두는 전각작품은 위창의 의식기저를 독자적 상형문자 의미구성을 통해
전한다.

위창은 미술사학에도 뛰어난 공적을 남겼다.

1928년 계명구락부에서 출간된 "근역서화집"은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
1,117명의 사적과 평전을 편년제 저서로 엮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근대 학문이 수입된지 100년을 헤아리고 있지만 역대
서화가의 계보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상술한 책은 위창이후에 없었다.

"근역서화징"은 우리나라 서화사연구자의 첫번째 장서로 기록돼 있다.

근역서화징외도 서화사의 필독서로 꼽히는 근역서휘, 근역화휘,
근역인수, 근묵 등을 펴내었다.

위창은 53년 피난지인 대구에서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