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영 < 연세대교수/경제학 >

요즈음 "바로 세우기"가 유행이다.

재미삼아 "정부 바로세우기" "정당 바로세우기" "기업 바로세우기"
"재벌 바로세우기"라는 말도 만들어본다.

바로 세우기란 참 좋은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바로 서지 않거나 심지어 거꾸로 선채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 더욱 반가운 말이다.

바로 세우기는 창조를 위한 파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고통과 저항을
수반할수 있다.

그러나 바로 세우기는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이며 고통과 저항을 극복하는
희망의 운동이다.

흔히 21세기는 정보화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정보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정보의 축적과 활용에 뒤지는 개인이나 조직은 살아남기 어렵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당면한 주요 과제의 하나는 정부의 "정보공개정책
바로 세우기"라고 생각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는 정부정보의 유통이 지나치게 경색되어 공익이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으며, 정부정보의 공개를 대폭확대하고 유통을 적극적
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국가발전에 긴요하다는 것이다.

전체주의나 권위주의 정부는 국민을 감시하고 지배와 통치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국민의 복종을 요구할 뿐 국민이 정부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정부는 정부의 활동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민주시민으로서 국민은(공익을 해치지않는 범위안에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보공개는 여러가지 형태로 정부와 정책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수 있다.

예를들면 정보공개로 국민이 정부에 대해 잘 알게 됨으로써 정부의 역할을
바로 세우고 스스로 사회-정치적으로 성숙할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수 있다.

정부권력이 정부 엘리트의 사익보다는 공익을 위해 정당하게 행사되도록
국민이 정부를 감시할수 있게 하는 것도 정보공개의 중요한 기능이다.

또한 정부 안팎의 많은 전문가가 정책을 분석-평가하고 여러 사람의 지혜를
쉽게 모을수 있게 함으로써 정부정책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

정보공개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때 우리 정부의 정보관리는 시대에 맞지
않는 면이 많다.

기본적으로 정책담당 부서가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
하는데 소홀하다.

뿐만 아니라 얼마되지 않은 정보마저 일반국민은 고사하고 관련부처나
관심있는 전문가에게 널리 유통시켜 정책의 분석과 평가에 적극적으로 활용
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심지어 동일한 부처내에서 중요한 정보의 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정부의 개혁이 국민의 동참없이 이루어지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비판을 받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정책의 형성단계에서 충분한 논의와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투입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제한적일 때 정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원료의 질이 낮으면 제품의 질도 낮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보의 통제와 독점이란 장막뒤에서 부실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함량
미달의 단편적인 정책은 국가자원을 낭비하고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킬수 있다.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는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보다 못한 성과를 낼수밖에
없는 것과 일맥 상통하는 현상이다.

정부정보의 유통이 공익보호의 차원을 넘어 공익을 손상할 정도로 경색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책담당자들이 정보를 권력의 원천으로 인식하기 때문
이다.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거나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일반국민은 물론 외부
전문가나 다른 관련 부처조차도 정책형성 과정에서 배제하거나 무력화할수
있다.

정책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도 있으며 개인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악용할 수도 있다.

정부정보의 관리가 공익보다는 정부 엘리트의 사익을 위해 왜곡되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지금 1960년대이전의 저소득 농업사회와는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는 국제질서도 한층 더 복잡한 형태로 재편되어 가고 있다.

우리의 경제규모와 사회구조및 국제관계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이제는 소수
정책담당자만의 힘으로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책의 질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수 있는
정보공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폐쇄적인 정보관리 제도와 관행을 바꾸려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정보공개법 제정이 정부안에서 흐지부지되고 만 사실은 정보공개의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정부 엘리트들의 이해가 얼마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정부는 이제 정보의 통제와 독점을 통한 정부 엘리트의 보신주의
부처이기주의 그리고 권위주의적 정치-행정 문화를 과감히 청산하고 생산성
높고 경쟁력있는 진정한 민주정부가 되기위한 노력을 행동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정부 엘리트의 컴퓨터를 고속정보통신망에 연결한다고 정보시대의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폐쇄적인 정보관리 행태를 극복하여 정보를 폭넓게 공개하고 정부의
각 부서와 민간부문 사이에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가 가득하게 흐를때 정부는
좋은 정책을 만들수 있고 우리사회의 잠재력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결집
될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