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정부가 20일 드디어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를 향해 각기 조치
제1보를 내디뎌 일대 전기가 없는 한 양국관계는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대립국면을 모면키 어렵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마치 이불 안에서 마주 발을 뻗으면 다리를 비벼대지 않을수 없는 근거리
인접관계여서 쌍방 모두가 어른스럽지 않고는 득이 안될 다툼에 언제까지건
말려드는 얄궂은 숙명마저 느낀다.

수천년 교류사에서 크게 두차례 일방적 완력이 문제를 그르쳤고 그후유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채로 있다.

이제 전혀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는데 전철을 되밟는다면 아시아는 통틀어
세계의 손가락질을 끝없이 벗어나기 힘든다.

자꾸 문제의 허상을 논하지 말고 실상을 보며 얘기하자.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독도문제는 혼동할 일이 아니다.

경제수역은 82년 세계수자원보호를 내건 유엔 해양법협약에 기초한 것이니
선후는 있을망정 어느나라고 반대하거나 협상을 마다할 계제가 아니다.

그동안 한-일 어업협정에 따라 조금이라도 득을 보아온 쪽을 한국측이라
볼진대 새 경제수역 선포 이후 득보다 실이 많음은 이쪽이다.

차후 경제수역 획정에 있어서도 불가불 이해조정이 초점이 됨은 당연하다.

20일의 양국 발표로 미루어도 어업회담의 조만간 개최는 대다뵌다.

쌍방이 연안기선 200해리를 긋고 그것이 겹치는 수역안에서 중간선을
합의로 획정함은 국제 관례다.

문제의 초점은 한-일간 중첩 수역내에서의 획선에 있어 독도가 갖는
의의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독도와 경제수역 획정간에는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200해리의 기점 또는 기선으로서 상주인구등 해양법상 제 조건을 독도가
구비했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 점에서 일측이 경제수역 관련 공식성명에 독도 언급을 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비록 독도의 합법적 점유가 세계에 주지되어 온 한국의 외무장관 성명에도
독도 언급은 없다.

그러나 일본 각료가 경제수역 관련 보충설명에서 번번이 독도영유권 주장을
거르지 않고 있음은 EEZ문제를 기화로삼아 독도 문제를 국내정치에 활용
하려는 저의 하나다.

특히 하시모토 내각 출범으로 이점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일본의 막대한 국부로 보나, 산재한 소도들을 기점으로 그어지는 방대한
경제수역으로 보나, 생각있는 많은 일본인들은 한점 바위섬을 놓고
일전불사의 분쟁을 감수할 가치를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그 섬의 한반도 귀속은 재론 필요없이 명백하다.

이렇게 차례로 비요소적 인자를 제외시켜 볼때 남는 문제의 핵심이 독도
귀속시비가 아님은 자명해진다.

순전히 집권세력, 그것도 과거 군국 일본의 과오를 영광으로 호도하며
새로운 정치-군사 대국을 동경하는 일부 국우세력의 망상적 음모라는 깊은
혐의를 누를수 없다.

양국 국민이나 정부, 특히 하시모토 일본 총리는 일신의 영욕과 나라와
지역의 그것을 혼동하는 과오를 삼가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