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돈 굴릴데가 없다.

대기업은 금융기관을 떠나고 있다.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싶지만 부도위험성이 높다.

그래서 나타난게 대규모 해외투자확대와 가계대출 세일이다.

금융기관들의 해외투자는 올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강원 부산은행과 한국생명 LG종금 LG증권 삼양종금 등 8개 금융기관은
아시아채권투자전용펀드인 ''인컴파트너스 아시아고정금리펀드''에 5,000만달러
를 투자키로 하고 12일 조인식을 갖는다.

동양투금도 그룹내 다른 기업과 함께 5천만달러규모의 해외펀드를
말리이지아 나부안지역에 설립한다.

다른 증권사 투금사등도 회사별로 3백만-4백만달러를 해외펀드에 출자할
계획이다.

출자금은 해외에서 직접 투자되거나 국내주식투자로 활용(레버리지 펀드)
된다.

은행들도 올들어 해외현지법인을 통한 해외증권투자를 지난해보다 20%가량
늘릴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가계대출세일도 본격화되고 있다.

은행은 물론 보험사 신용금고들도 "파격대출"을 외치고 있다.

하나 신한 한일 주택은행등은 거래실적이 전혀 없어도 최고 1억원까지
대출받을수 있는 상품을 선보였다.

기간도 최장 20년이다.

삼성 교보 대한등 생보사들도 최고 1억원까지 대출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신용금고들도 "직장인신용대출"을 만들어 가계고객을 발굴하고 있다.

이처럼 불과 1-2년전만해도 상상할수 없었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은 넘쳐나는데 굴릴데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썼으면 하는 대기업은 금융기관을 외면한다.

마지못해 중소기업을 찾아나서지만 선뜻 돈을 빌려주기가 겁난다.

지난해 부도를 낸 중소기업이 1만3천9백92개로 사상최대에 달한 탓이다.

주식등 유가증권투자를 하고 싶지만 지난해 실패경험이 발목을 잡는다.

대기업의 탈은행화는 점점 가속되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대기업에 대한 은행대출금은 20조5천9백63억원이다.

94년말의 21조1천3백37억원보다 5천3백74억원이나 감소했다.

당좌대출도 줄고 있다.

지난 8일 현재 5대 시중은행의 당좌대출소진율은 28.6%로 떨어졌다.

자금이 남아돈다던 지난달에도 35%안팎에 달했다.

이정도 소진율이면 당좌대출을 쓰고 있는 대기업은 거의 없다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한전 삼성중공업 현대건설 대우등은 자기가 발행한 어음을 투금사에서
할인, 당좌대출을 갚고 있다.

어음할인금리가 연 11.5%에 불과한 반면 당좌대출금리는 연 13%대에 달하고
있는 탓이다.

삼성전자는 지난연말 4천억원의 대출을 현금 상환, 은행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다.

얼마나 많은 자금을 조달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자금을 운용
하느냐가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안상욱.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