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강원 <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

서울시민들은 이제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시정부가 일상
시민생활의 고민을 이해해 줄뿐 아니라 내일의 문제를 예방하고 또 장래의
발전을 기약하는 계획을 추진해 줄 것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서울의 산적한 도시문제에 시달려 온 시민들로서는 그러한 혜안과 능력을
갖춘 슈퍼맨의 시장을 갈구해 왔는 지도 모른다.

지난 6월 선거과정에서 조순후보는 포청천 시장이 되어 난마같이 얽힌
시정을 올바르게 바로 잡겠다는 구호를 앞세우고 당선되었다.

솔직히 말해 고도산업기술시대에서 거대도시인 서울시의 복합행정을 농경
위주의 봉건왕조 사회에서 활약했던 명판관 포청천이 환생하여 책임지게
된들 과연 잘 할 수 있을런지 납득이 되지 않으나 선거구호로서는 상당한
기대효과를 낳은 모양이다.

오늘날의 대도시 행정(구체적으로는 도시계획.관리.정책)의 문제는 고도로
기술적인 전문분야이다.

사안이 옳고 그른것, 불의와 공명정대한 것으로 판결될 수 있는데도 사리
사욕때문에 혼란되는 문제는 그렇게 많지 않다.

둘다 옳거나 둘다 그른데도 그 중에서 더 옳은 것 또는 덜 그른것을 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눈앞에 나타난 문제 보다도 잠재적이지만 파괴력을 가진 문제를 사전에
규명하여 대비책을 세우기가 더 힘들다.

이를 위해 전문가를 폭넓게 동원하고 각 부문의 식견을 구해야 한다.

특히 도시문제는 시간의 장구성과 공간적 구체성 때문에 거시경제적 문제
와는 크게 다름을 인식해야 한다.

시장직에 취임한지 6개월 동안에 보여준 크고 작은 많은 의사결정을 볼 때
조순시장의 행정방향을 가늠케 한다.

앞으로 2년여의 임기중에 행정방향이 어떻게 재수정되어 갈지는 모르겠으나
그동안 나타난 몇가지 사례들은 적잖은 우려를 느끼게 한다.

조시장은 처음부터 경영마인드를 중시한 시정운용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투자재원이 불투명하게 보이는 사업이라해서 기존의 다수계획안을
재검토 내지 보류시켰다.

중장기 도시기본계획을 위시하여 도시구조개편에 따른 부도심권 육성,
국가중심가로 조성, 신청사 건립부지, 5대 거점지역 개발, 지하공간 개발,
제3기 지하철건설등 그동안에 나름대로 전문가들에 의해 추진되어 온 사업
들을 한마디로 판결하였다.

그동안의 많은 대형사업들이 치밀한 계획없이 전시효과를 위해 추진된
사례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사회간접시설및 도시계획사업은 기업경영식 관점에서 건전성과
전시성을 간단히 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도시와 지방정부는 한 국가와 같으며 도시는 그야말로 거대한 유기체이다.

유기체의 특성은 한 부문문제를 전체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으며, 그것이
수많은 다른 문제와 연쇄고리로 파급된다는 점이다.

중장기 도시기본계획.도시구조개편과 부도심 육성개발등의 문제는 수십년의
시차를 두고 서울의 도시경제를 결정하게될 사안이다.

기업경영과 도시행정이 크게 다른 것은 기업경영은 단기적 성과를 중시
하는 데 반해 도시행정은 시민의 다원화된 가치체계하에서보다 항구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지하공간개발에 관해서도 서울은 선진외국도시에 비하여 개발의 필요성이
월등히 높은데도 그동안 등한시 되어 왔다.

심지어는 과거의 개발사업이 너무나 단기적 목표에만 집착한 나머지 이제
개발의 필요성이 절실한 지하공간자원을 사장시켜버린 사례가 너무 많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심각한 교통문제도 기업경영식 단견때문에 지하철
건설을 일찍부터 서두르지 못한 데 큰원인이 있다.

너무나 늦게야 도입되기 시작한 서울의 지하철은 1호선이 완공된 후 5년간,
그리고 4호선이 완공된 후 5년간씩이나 완전히 중단되곤 했었다.

쉬지 말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지하철 건설이 정책의 무지로 오락
가락 하는 동안에 연계교통을 고려한 승환역체계를 효과적으로 구축할 수
없었고 나중에야 몰아서 다급히 추진한 소나기식 건설은 부실공사를 초래
했다.

또 그동안에 급증한 노면교통처리의 어려움과 교통혼잡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비용은 엄청난 것이다.

서울시는 서남부 교통소통을 위해 제기되어온 평촌-신림동간 도로개설을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로서 안양방면의 교통량이 유입될 경우 관악로지역의 교통혼잡이
크게 우려된다는 것이다.

평촌-신림동간 도로개설은 광역교통 체계의 관점에서 타탕성이 논의될
문제이지 어느 한 지역과 지역간의 이해득실에서 접근될 문제가 아니다.

같은 이유에서 그것은 대통령의 선거공약 사업이기 때문에 주장되어서도
안된다.

안양.평촌지역과 신림동간의 도로개설은 수도권 광역교통 체계에서 양지역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익사업인 것이다.

조순식 시행정부가 지나치게 편협한 경영마인드를 도시행정에 앞세운다면
그 폐해는 과거의 임명직 시장이 권위주의와 전시행정에 젖어 초래한
불합리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경계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