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야, 내가 묻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해야 하느니라"

희봉이 약간 뜸을 들이며 소아의 마음을 준비시켰다.

소아는 사뭇 긴장하며 희봉의 질문을 기다렸다.

"양주나 소주 지방에서 서방님을 호리던 계집은 혹시 없더냐? 서방님이
여기서도 종종 그런 일이 있어 내 속을 태우기도 했거든"

소아는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런 여자는 없었어요.

대옥 아씨 아버님 병문안을 가서 장례까지 치르는 마당에 대감님이
바,바람을 피울리가 있겠습니까.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될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서방님이 못된 계집들에게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느니라.

그런 낌새가 보이면 서방님으로 하여금 나를 생각하도록 소아 네가
슬쩍 귀뜸을 하란 말이야.

그것으로도 안되면 네가 그 계집을 만나서 혼을 내주던가.

만일 서방님이 바람을 피우는데도 네가 그대로 보고만 있는다면 나중에
여기로 돌아와서 나한테 혼이 날 줄 알아"

희봉은 이런 말을 함으로써 은근히 소아에게 가련에 대한 몸가짐을
조심하도록 경계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소아는 몹시 당황해하며 물러나려 하였다.

"좀더 있다가 건너가려무나.

털옷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니 우선 털옷부터 꺼내어 짐을 꾸려보자.

그리고 필요한 것들 생각나는 대로 챙겨놓고"

희봉은 시녀 평아를 불러 소아와 함께 짐을 꾸려보도록 하면서 옆에서
이것저것 세심하게 도와주었다.

그러느라 어느덧 밤이 깊어갔다.

새벽무렵에 희봉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날 요량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꿈속에서 소아가 울고 있었다.

"마님, 억울해요. 저는 대감님과 아무 일이 없단 말이에요"

희봉은 소아를 의심했던 것이 미안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가련을 옆에서 모시느라 고생이 많았을 소아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주지 못하고 괜히 의심을 하며 윽박지르기만 했으니 희봉의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었다.

희봉도 소아를 끌어안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님, 마님, 일어날 시간이에요"

평아가 희봉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희봉은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녕국부로
건너갔다.

그리고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정각 6시반에 하인들을 불러놓고 점고를
실시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