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의 차관급 합의에 이어 남북한은 25일 북경실무접촉에서 쌀지원
세부사항에 최종합의함으로써 대북쌀제공 문제는 고비를 넘겨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지난달 26일 나웅배통일부총리가 북한에 대한 쌀지원 제의를 한지 꼭
한달만의 일이다.

나부총리는 25일 서명사실을 보고받은 후 기자실에 들러 "이번 쌀지원이
남북간 불신을 허물고 신뢰를 쌓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쌀을
생산해준 농민과 세금을 부담할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통일원의 한 당국자는 "45년전인 오늘(6.25)에는 북한에서 탱크가 내려
왔으나 지금은 남한쌀이 북한에 가게됐다"며 감개무량해 했다.

극비로 진행된 남북접촉,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차관급회담, 산고를 거듭한
실무협의등 북한에 쌀을 보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런 만큼 이날 정부당국자들은 "남북화해의 첫걸음" "역사적 쾌거"등의
수사를 동원, 흡족해 하는 모습이었다.

KOTRA와 삼천리총회사간의 실무합의에 따라 1차분 쌀 15만t은 전량 오는
8월10일까지 북측에 인도될 전망이다.

당초 남측은 "10월까지 보내겠다"(나부총리)는 입장이었으나 "북측이
하루라도 빨리 보내달라고 해 일자를 앞당겼다"(정부당국자)고 한다.

정부는 수송일정이 다소 빠듯해짐에 따라 25일 2차선적분 8천t에 대한
선적에 돌입했다.

2차선적분은 마산항(2천t) 군산항(2천5백t) 목포항(3천5백t)등에서 분산
석적된다.

또 당초예상보다 인도시기가 앞당겨짐에 따라 5만t(93년산)을 제외한
나머지 10만t은 곡종별수급상황을 고려, 89.92.93년산 일반미를 적정비율로
조정해 혼합방식보다는 연도별로 포장해 보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와 관련, 농림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북경실무합의 내용을 검토해본 결과
지금까지 수립한 수송계획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예정대로 도정 포장 육로수송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실무회담 계약서는 그러나 남한입장에서 볼때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계약서 4항 수송조건에는 필요시 제3국선박을 이용토록 해 경우에
따라선 국적선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됐다.

국기게양 문제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로선 태극기를 달고 북한영해 근처까지 간후 그곳에서 적십자기로
바꿔다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송항로도 영해가 아닌 공해를 이용키로 합의, "민족내부간 거래" 취지를
무색케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이처럼 서두르는 것은 일본쌀을 하루라도 빨리 받고
일본과의 본격적인 수교협상에 돌입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 24일까지만 해도 진통을 겪던 북경실무회담이 25일 갑자기 타결된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당초 25일 동해항을 떠날 예정이던 시아펙스호의 출항을 "나진항의
하역사정이 안좋다"며 24일 밤 갑자기 연기요청했었다.

이에 따라 북측이 하루만에 돌변한 것은 남북간에 모종의 이면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