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화폐가치가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폭락세를 보이며 유럽 환율
위기가 고조되던 지난 8일오후, 헬뮤트 콜 독일총리는 유럽환율 안정을 위한
분데스방크(중앙은행)의 역할을 묻는 기자들의 열화같은 질문에 "독일의
중앙은행은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다"며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는 이어 "나의 오랜 경험으로 볼때 분데스방크의 정책은 항상 옳았다"며
금융위기에 대한 상황판단은 분데스방크의 몫이지 총리로서 대답할 사안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같은날 영국 런던에서는 케네스 클라크재무장관과 에디 조지 중앙은행총재
가 자리를 같이하고 파운드화의 폭락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통화신용정책에 관한한 중앙은행총재는 재무장관과 동등한 자격에서 만나
입장을 교환하는 전통이 자리잡은 결과였다.

프랑스 중앙은행도 이날 프랑화의 안정을 위해 정부와 아무튼 상의없이
5~10일물 기준대출금리를 인상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해 중앙은행 부총재의 선임을 둘러싸고 중앙은행측과
정부간 치열한 논란을 벌였으나 결국 중앙은행의 승리로 끝났다.

금융정책은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중립적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원칙을
세울 것이다.

반면 그리스 스페인등 유럽에서도 상대적으로 후진적인 국가들은 아직도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중앙은행은 글 들러리에서 결정된 정책만 집행하는게 일반적인 양상이다.

마치 선진국의 기준이 중앙은행의 독립정도에 달려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도 지금 중앙은행독립이 핫이슈로 부각돼 있다.

외국의 사례가 항상 옳은것은 아니나 "선진국=중앙은행독립"이란 등식이
유럽에 자리잡는 이유는 곰곰히 되씹어 볼 필요가 있는것 같다.

통독후 독일처럼 유럽의 선진국이 정치상황에 관계없이 물가안정을 유지한
것은 중앙은행의 중립성 그만큼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