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시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지 그 안에 세워진 구조물들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한 도시가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 자리하게 되려면 물질적인 외양을
뛰어넘어 정서적인 이미지로 승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의 유명 도시들을 돌아보게 되면 실상보다 과대포장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영혼이 빚어낸 예술작품이라는 도구를 사용했을때
더욱 두드러진다.

위대한 도시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창조해 낸 이미지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프랑스 파리도 어느 면에선 예외가 아니다.

파리를 그렇게 만든데에는 시인들의 공적이 적지않다.

파리의 서정과 낭만, 아름다움과 정다움, 우수와 고독을 시로 순화시켰다.

그것이 세계인들로 하여금 파리를 사랑하게 만든 유인중의 하나가 되었다.

보들레르를 비롯한 아폴리네르 엘뤼아르 프레베르등이 대표적 주자들이다.

"가는 곳마다 여름날에 꼬부라진 산길과 같이 꽃과 새들로 가득찬 파리여!
/가는 곳마다 웃음 머금은 어머니들과/가냘픈 어머니들로 가득찬/깊은
입맞춤과 같은 파리여!"(엘뤼아르의 "1944년4월에도 파리는 아직 숨을
쉰다")

레지스탕스의 시인답게 끈질긴 반나치운동의 생명력을 노래한 시이면서도
파리가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아름다운 자연과 정겨운 인정을 잃지 않는
도시라는 점을 표출시킨다.

수도가 된지 600년이 된 서울을 주제로 한 시들 또한 적지 않다.

멀리는 조선조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을 비롯한 권근 김수장 안민영등
한시인들에서 시작하여 현대시인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들이 서울의
자연과 풍물, 계절과 인정을 읊은 시들을 문화유산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이 값진 유산들이 외국인들은 물론 한국인, 아니 서울사람들에게서
조차도 서울의 정서를 일깨워주는 시심으로 남겨져 있지 못하다.

때마침 서울시와 한국문인협회가 서울을 주로 노래한 현대시인들의 시
218편을 세종문화회관 외벽에 새겨 만든 "시의 벽"은 그 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울의 이미지를 되살려 내게 하는 촉매구실을 하게될 것으로 기대
되는 바 크다.

"서울은 극동의 별/이 별이 꺼지면/우리들은 고향을 잃는다"(조병화의
"서울서시")

시인들의 육필로 각인된 시심이 확산되는 날, 서울을 더욱 아름답고
오롯이 가꾸어 "세계의 서울"로 승화시킬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