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대기업그룹들의 의욕적인 설비투자 계획은 내년에도 현재의 경기확장
추세가 이어지리란 전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올해 수출확대와 내수호조가 맞물리면서 벌어들인 돈을 확대재생산쪽에
중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내년투자의 특징은 첫째 투자우선 순위에서의 제조업우위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 삼성등 30대 대기업그룹의 내년도 제조업 설비투자계획치는 올해보다
53% 증가, 비제조업 증가율(30.4%)을 크게 웃돌고 있다.

올해 제조업의 증가율이 58.4%로 비제조업의 32.5%를 앞선데 이어 이런
현상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둘째는 반도체 멀티미디어등 신전자분야가 단연 내년도 설비투자를 주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그룹의 경우 반도체 16메가D램 공장건설과 TFT-LCD(초박막 액정표시
장치) 양산공장 건설등 전자분야에만 올해(1조3천억원)보다 38.4% 늘어난
1조8천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전자분야가 그룹 간판업종이었던 자동차 조선등을 제치고 최대규모 투자
업종으로 떠올랐다.

삼성그룹은 더 의욕적이다.

16메가D램 생산라인 증설등에 올해보다 26.8%가 많은 2조8천억원을 쏟아
붓기로 했다.

럭키금성그룹은 16메가D램은 물론 주문형반도체 마이크로프로세서등
반도체분야에만 2조6백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올해 실적(8천4백억원)보다 무려 1백45%가 늘어나게 된다.

세째 삼성그룹의 신규진출이 확정된 자동차및 조선등 기계류분야에서
대기업그룹간 설비확대 경쟁이 불꽃을 튈 전망이다.

현대그룹이 전주 상용차공장과 아산 승용차공장에 1조6천5백억원을
투자키로 했고 대우그룹도 1조4천억원을 들인다는 방침이다.

쌍용그룹은 중형승용차 개발등에 5천억원을 들이기로 했고 삼성그룹도
대구 성서상용차공장 건설등에 6천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이같은 야심찬 투자계획을 내용면에서 들여다 보면
몇가지 우려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우선 자동화.합리화 투자보다는 양적인 설비능력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30대그룹의 전체 투자계획금액중 설비능력증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93년의 59.5%, 올해의 62.8%에서 내년에는 67.1%로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돼 있다.

반면 자동화.합리화를 위한 투자비중은 작년의 9.6%에서 올해 6.8%로
낮아진데 이어 내년에는 5.9%로 더욱 위축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들의 이같은 설비확장투자는 일본등 외국으로부터의 기계류.소재등
자본재수입 수요 확대로 이어져 가뜩이나 확대되고 있는 대일무역역조를
더욱 늘리는등 전반적인 수입증가세로 나타날게 확실하다.

홍재형경제부총리가 지난 21일 간부회의에서 "내년도 무역수지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최근의 경기활황세가 내년하반기께를 고비로 주춤해질 것이란
전문가들의 진단을 염두에 둔다면 대기업들의 이같은 투자는 설비 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어설 경우에는 설비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지는등
부작용의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또 대기업들의 투자확대에 따른 투자재원도 문제가 될수 있다.

증시등 자본시장이 활황국면을 지속하지 않는한 기업들은 투자재원으로
은행돈등 간접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30대그룹은 내년도 자금조달 계획으로 전체소요 자금의 23.9%를
금융기관 차입으로 조달하는등 총 68%를 외부자금에 의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그룹은 작년과 올해의 경우 금융기관 차입비중이 각각 18.3%와
22.3%에 그쳤었다.

또 내년에는 대기업들이 제조업등 설비투자이외에 민자 SOC(사회간접자본)
에도 많은 돈을 투입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내년도 주요 거시경제관리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금리안정을 어렵게 만을 공산이 크고 그에따른 중소기업들의 돈가뭄현상은
더욱 심화될수 있다.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해치지않는 범위내에서 이같은 부작용을 어떻게
막는냐가 정부에 주어진 정책과제랄수 있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