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유럽선진국들에서는 일반시민들이 일생동안에 관청에 출입할
기회가 몇번 안된다.

자신의 결혼식이나 결혼신고,또 자녀의 출생신고나 직계존속의 사망신고를
하러 일선행정관서에 들리는 일은 더구나 없다.

송사가 있을 경우도 사소한 사건일 때에는 지역별로 일과시간이 끝난
뒤에 열리는 순회재판정에서 판결을 받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보니
법원이나 검찰청사에도 갈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바로 시민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시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선진사회임을 확인시켜 주는 징표다.

한마디로 관주도형의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관의 규제나 간섭이 최소화되고 행정절차가 최대한으로
간소화되어 시민생활를 한껏 자유롭고 쾌적하게 만든다.

그동안의 한국사회는 어떠했는가.

관은 물론 민간부문에서도 그 반대현상을 흔히 발견하게 된다. 어떤
한가지 일을 처리하려다 보면 관청들에서 발행되는 갖가지 서류들을
첨부해야 되고 간이재판도 법원에 출두하여 판결을 받아야 하는 것이
비근한 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관청의 문턱을 넘나들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금년들어 행정규제완화조치가 취해지면서 행정절차가 간소화되어 오긴
했으나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볼수 없는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공공기관들은 늘상 행정수요의 증가를 핑계로 공무원
의 숫자를 늘려 오면서 청사공간이 비좁아지게 되자 각급공공기관들의
청사를 신축하게 되었다.

그것도 관의 위엄을 과시하려는듯 과도하게 넓은 대지위에 웅장한
건물로 치장된 것들이 많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에는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시청건물은 낡을대로 낡았는데 중앙관서 못지않은 건물에다 민원인들의
핀익도모라는 명분으로 넓다란 주차장을 갖춘 구청들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그에 곁들여 지방자치제 실시이후 높다란 빌딩으로 신축된 구의회건물
들도 과잉치장된 청사의 표본이다.

얼마전 "한강다리들의 붕괴위험진단"에 보수공사비가 너무 적다고
예산타령만 하던 시당국자들의 어이없는 작대가 시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또다시 구청과 구의회를 짓겠다는 얼빠진 발표를 했다.

시민들의 세금을 거두어다 자신들이 근무할 건물이나 짓고 시민들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공복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을수 없게
만든 처사가 아닐수 없다.

시민을 위한 공직자상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파행행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