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래만에 비원을 찾았다.

계절 탓일까 시국 탓일까 투명한 가을햇살을 받으며 그 적막한 고궁의
오솔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허름한 담장을 넘어 도시락을 먹곤했던 소용지돌계단에 앉아
만추의 정취가 가득한 풍경과 연못 수면 위에서도 가을빚을 띈 연잎을
바라보면서 문득 음울한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5백년 왕조의 성쇠를 지켜보았을 이 연못.

일찌기 노스트라다무스는 인류문명의 종말을 수면 위에 떠있는 연잎에
비유했다.

연잎 두개가 네개가 되고 네개가 여덟개로 늘어나서 이윽고 온 수면을
덮는날 연못속의 물고기가 모두 죽듯 인류문명의 종말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연잎이 수면의 반을 덮을 때에 가서야 비로소 우기를
깨닫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온갖 갈등과 문제점이 어쩌면 늘어가고 있는
이 연못의 연옆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상념이 그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지난 30년동안 너무나 숨가쁘게 달려왔다.

선진국이 3백년 걸쳐 이룩한 산업문명을 30년만에 다 받아들이고 이제
그들을 따라 잡으려 하니 오죽 급하게 왔는가.

10년 걸려야 할 공사를 2년에 완공했으니 그 다리는 무너지는게 당연하다.

급하게 서두르고 대충대충 마감한 후유증을 지금부터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일념으로 와이셔츠조각을 들고 세계를 누비며,
열사의 사막에서 피땀흘려 이룩한 그 위대한 성취도 우리의 몫이지만 거기에
수반된 책임도 우리가 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해내야 한다.

하루 빨리 성수대교 신드롬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서야 한다.

소용지를 박차고 날으는 저 오리처럼.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