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사망한뒤 북한에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군중이 연일 평양에
있는 거대한 동상앞에 몰려들어 울부짖고 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기절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언론은 백두산 천지의 물까지 비분을
못이겨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고 선동한다.

남한은 덩달아 들떠야할 이위가 하나도 없는데도 왠지 뒤숭숭하다. 몇몇
야당 국회의원이 조문사절운운해 말썽을 빚었는가 하면 젊은 대학생들은
김일성을 애도하는 대자보까지 내붙였다.

오히려 북한이 차분하게 느껴지는 반면 남한이 더 요란을 떠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들 지경이다.

한국전쟁을 일으켜 동족 300만명을 살해하고 1,000만 이산가족을 50년
가까이 눈물속에 살게한 전범이며, 결국 조죽을 분단시켜 민족의 역사
발전을 가로막은 김일성은 영원히 용서받을수 없는 민족의 죄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용서받지 못할 대죄는 스스로 교주가 된 세속적 정치
종교를 만들어 2,000만 북한 동포를 완전히 자아상실이라는 병에 걸리게
만든 죄라고 할수있다. 인간은 자아의 중심을 잃어버릴때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인격의 주체성도 와해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의 동상 아래서 울부짖는 군복차림의 어린이들을 보면 정치종교의
광신이 만들어 낸 결과에 섬뜩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남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면 남북사회의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북은 "나는 우리다"하는 고질병에 걸려
있고,남은 "나는 나다"하는 중병을 앓고 있다. 둘 다 병리적 증상임에는
틀림 없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나는 나다"라는 식의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의 특징
을 다른 사람을 따르지 않고 합리성을 존중하지 않으며, 진리의 기준이
없고 자유를 창조적인 목적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고 반항하기
위해서만 쓰는 것으로 집약해 놓았다.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결과적으로 신경질환성 불안의 희생자가 돼
버린다고 전망했다.

북한의 "나는 우리다"식의 사고는 역사적 필연인 개방이 이루어지면
사라질 증상이지만, 남한의 "나는 나다"식의 사고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세속적인 정치종교의 교주였던 김일성이 죽었다고해서 조문사절을 보내고
애도하는 따위의 짓거리는 "나는 나다"식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망동이다.

진리가 어떤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재확인한뒤 담당하게 지켜보면서
앞일을 설계하는 이성적 태도가 필요한 때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