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대형은행들이 거액의 부도사건에 잇달아 휘말리면서 은행에
대한 감독과 관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적인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대규모 은행대출사고로는 독일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
프랑스 최대국영은행인 크레디리요네, 스페인의 4위은행인 바네스토를
꼽을수 있다.

도이체방크는 대주주로 거액을 투자한 메탈게젤샤프트사가 작년말
도산일보직전까지 이른데 이어 불과 석달만에 12억마르크(약7억1천1백만
달러)나 대출해 준 부동산재벌, 뷔르겐 슈나이더씨의 계열사들이 줄줄이
부도를 냄으로써 곤욕을 치르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스스로를 메탈게젤샤프트의 조직적인 사기음모에 의한
희생양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슈나이더그룹의 경우는 주인공인 슈나이더회장부부가 현재 행방불명인
상태여서 아직 정확한 내막을 알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도이체방크는
관련인사들을 형사고발해 두고 있다.

슈나이더그룹에 대한 대출책임을 맡고 있는 게오르그 크룹이사는
"슈나이더회장이 존경할 만한 인사로 믿었었다"면서 이번 사건이 "금융
산업과 독일의 명성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으며 은행으로써는 책임을 통감
한다"고 말했다.

슈나이더회장은 도널드 트럼프,라이히만형제등과 함께 부동산개발업자로
세계적인 이름을 얻고 있으면서 현인(Weiss)으로까지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지금 독일사법당국에 의해 현상금이 걸려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데
소식통들은 그가 자가용제트기를 타고 스위스나 이란쯤에 가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대형부실채권때문에 도이체방크는 올해에만 수억마르크를
결손처리해야할 처지다. 슈나이더그룹은 채무만 총50억마르크(약30억달러)
에 달하고 납품업자들에 지불하지 않은 외상만도 2억5천만마르크로 추산
되고 있다.

최대채권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슈나이더그룹의 보유부동산이 30억~40억
마르크정도 될것으로 보고있다.

스위스사법당국도 2억스위스프랑(약1억4천만달러)으로 추정되는
슈나이더회장관련 은행계좌들에 대해 출금동결을 명령해 두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헬무트 콜독일총리가 "일반서민에게는 10만마르크를
대출해주는 것에 인색한 은행들이 어떻게 한사람에게 그처럼 거액을 선뜻
빌려줬는지 모르겠다"고 노발대발했다는 소식이다.

사실 단골고객과 오래동안 관계를 맺는 독일은행들의 관례는 독일만이
갖는 강점으로 인정돼 왔다. 그러나 그런 전통을 따르던 도이체방크가
발목을 물리고만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독일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소수 대형은행들의 영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쟁과 함께 주요 고객들에 대한 대출을 검사,감독하는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콜총리는 그러한 사기사건이 은행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새로운 입법
조치가 필요치 않다고 말하고 있으나 독일금융제도에 대한 비판자들은
감독제도를 강화하고 금융및 파산규제제도에 사회적 책임요소를 새로
추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어려움은 그래도 크레디리요네나 바네스토보다 덜한
편이다.

곧 민영화될 국영은행인 크레디리요네는 전임회장인 장이브 하베러씨가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의 사회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회당에
호의를 갖고 있는 기업들에 투자와 대출형식으로 무작정 돈을 공급,
2년째 심각한 적자행진을 계속했다.

이에따라 프랑스의회는 이번주에 크레디리요네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
부실화문제를 조사할 계획이다.

스페인의 바네스토(방코 에스파뇰 데 크레디토)는 부실대출로 입은 손실
을 메꾸는데 40억달러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수년간 스페인금융산업의 간판역할 맡아온 이 은행은 출자회사를 포함,
기업들에 대해 무모할 정도로 대출을 했다. 바네스토는 최근 스페인
금융산업의 지도를 바꿔놓겠다는 야심에 불타는 투자기금인 산탄더에
증자분을 매각, 20억달러정도의 손실을 보충했다.

이러한 유럽대형은행들의 부실경영은 최근 2차대전후 최악으로 표현되는
경제적, 정치적 침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겸업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은행들이 제조업부문에 대한 출자로 기업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역사적 전통이 그러한 은행부실화를 재촉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단일시장의 출범으로 역내국경이 없어짐에 따라 금융산업
에서도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경영의 투명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은행전문가들은 은행경영의 부실로 단기적으로는 자본의 증권시장유입이
크게 늘고 장기적으로는 금융산업개혁을 요구하는 정치적인 압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