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기업가가 주색을 가까이 하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다. 요즘은
기업가가 정치외도를 하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는 정치와 가까이 했다가 기업도 망하고 자신도 망한
경우를 허다하게 볼수 있다. 자업자득이라고 해버린다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넘길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에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이식된지 100년이 채 못된다. 1876년에
조선은 개국을 했다. 그러나 개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심으려 한것은 1894년 갑오경장때 부터다. 그리고 1945년
해방이후에야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 경제가 뿌리를 내렸다. 그러니까
한국 자본주의의 연륜는 아직 반세기밖에 되지 않는다. 100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 자본주의 경제의 지도자로서 숱한 인물이 명멸 교체됐다.
해방전에는 민족자본에 의한 기업의 대명사가 된 경성방직을 창업한
금년수,유통산업의 상징인 화신의 박흥식등이 있다. 해방후에는 한국의
실크왕으로 인컬어져 항도 부산의 경제는 좌지우지했던 삼화그룹의
금지태,삼성재벌의 창업자 이병철,쌍용그룹을 일으킨 김성곤,현대재벌을
이룩한 정주영,포철의 신화를 만든 박태준등이 바로 한국자본주의 경제의
리더였다. 출신지도 학력도 경력도 전혀 다른 이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가 한때 사법의 소추를 당하고 더러는 수감당하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죄명은 친일행각 밀수 탈세 부정축재 선거법위반등 여러가지다.
이유나 죄명이야 어떻든 한가지 분명한것은 그들이 당시의 권력자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계의 리더로서 세인의 존경을 한몸에
모았던 명사가 하루 아침에 오욕의 시궁창으로 떨어지고 더러는 수의를
걸치지 않을수 없었다. 불행한 일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지도자였던 모건
록펠러 카네기 포드등은 때로는 정부와 대립하고 반트러스트법에
저촉되는등 법에 의해 철저히 규제를 받았으나 모두가 명예를 누리고
평온속에서 일생을 마쳤다.

일본의 미쓰이일족이나 미쓰비시재벌을 키운 이와자키일족도 패전후
재벌은 해체 되었으나 형사소추없이 편하게 여생을 마쳤다.

마쓰시타나 소니의 창업자도 전후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대중의 존경은
한몸에 모으고 지냈다. 물론 어느나라든 자본주의 초기의
본원적축적과정에서 해적자본주의니 약탈자본주의니 해서 악명을 떨친 자가
무수히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계의 주류는 못되고 그냥 졸부로 끝났다.
설령 그들이 법의 심판을 받긴해도 재계의 돌연변이현상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경제발전에 앞장선 재계의 지도자,경제계의
대표적인물이었던 인사가 법의 준엄한 추궁을 받고 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기업은 권력과 유착하거나 권력의
비호속에서 급성장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유착이 끝나고
대립관계로 바뀌면 권력으로부터 무서운 보복을 당하게 마련이다.
권력이란 불복하거나 도전하는 자는 가차없이 제재한다. 그게 권력의
본질이고 속성이다.

정경유착으로 자란자가 권력에 등을 돌렸을 때는 매서운 보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걸 몰랐다면 너무 자신의 힘을 과신했거나
착각한 것이다. 권력의 비호속에 자란자는 유착이 끝나면 그때까지 누렸던
혜택이나 특혜를 박탈당한뿐 아니라 "괘씸죄"까지 가산되어 "되로 받고
말로 물어야"하는 결과를 자초한다. 최근 우리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재계인사들의 일련의 비극은 바로 이런 착각과 과신의 탓이다.

정경유착도 나무라지 못한다. 60,70년대의 개발연대는 수출입국
중화학공업화를 위해 권력자가 개발을 주도했다. 비즈니스를 하기위해
권력과 밀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과정을 겪는동안 한국의 기업은
시장지향형이 아닌 권력지향형이라는 악습이 몸에 뱄다. 불특정다수의
시장 고객상대로 자유경쟁해서 비즈니스를 하기보다 특정의 소수 권력과
결탁해서 독점이윤을 누리는것이 훨씬 손쉽다. 정경유착에는 반대급부가
따른다. 유착으로 얻어진 이윤은 상납해야 한다. 그러다가보면 유착에
의한 비생산적인 코스트는 정상적인 시장개발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더
비싸게 소요될 수도 있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 정경유착기업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권력의 비호를 받고있는
국내에서는 시장을 배타적으로 독점지배할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해외에는 그게 통용되지 않는다.

한국의 독점기업은 해외에서 적자,국내서 흑자를 내는 기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수출제일주의를 구실삼아 국내 소비자의 희생과 부담위에 해외에
덤핑 수출했다. 이런 저런 모순이 권력과 기업의 유착이 끝나고 서서히
폭로되고 있다.

기업에 있어 정경유착이란 아편과 같다. 한때는 달콤하지만 중독에
걸리기 쉽다. 또 기업체질이 더욱 좀먹는다. 그래서 선진 자본주의
재계에서는 기업가는 정치와 되도록 거리를 두려고 한다.

기업가가 정치를 하면 정치인으로도 대성하지 못한다는게 선진국 재계에서
상식이다. 재계인이 정치가를 겸한다는 것도 플러스 보다 오히려 마이너스
가 더 많다. 정치를 기업의 방탄조끼로 생각하는것부터가 사도다. 이번에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도 자산이 많은 정치인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것은
역시 정경겸업을 백안시하는 동양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중국고사에 고복격양가란게 있다.

"날이 밝으면 밭을 갈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든다. 샘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밥지어 먹는다. 황제의 위세란 나와 관련이없다" 재계인이
권력의 움직임을 잊고 자기 맡은 일에 전념할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정치를 잊어버리는 것이 양정의 증거다. 재계인이 정치와는 아랑곳 없이
비즈니스에 몰두할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게 문민정권의 임무다.
그리고 재계가 권력과 유착하는게 금물인것처럼 정치가 경제에 용훼
간섭해서도 안된다.

경제논리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 양쪽이 모두 왜곡되게 마련이다.
이번에 재계인에대한 법적 추궁은 이해할수있다. 그러나 이때문에
재계지도자들이 지금까지 가꾼 노하우 마저도 폐기한다는것은 너무나
아깝다. 인적자원의 최대의 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