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행 김모씨(32)는 매년6월이 되면 두통증상이 나타난다.
재산세를 거두러 다녀야 하기때문이다. 작년에도 그랬다. 김씨는 30건에
3백만원을 할당받았다. 목표를 안채우고 몸으로 때울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리승진을 앞둔 그로서는 인사카드에 흠집을 내는게 싫었다.

"어차피 재산세를 내실것 아닙니까. 제가 받으러 간다니까요""1년내내
전화한통 없더니 아쉬우니까 전화하는구나"평소 연락이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전화를 하다보니 이런 말을 듣는건 예사였다.

퇴근시간인 오후6시,그는 서류봉투에 수납방("수납필"이라는 도장)과
자기도장 잔돈을 챙겼다. 그리곤 상계동 친척집으로 향했다. 근1년만에
찾는 집이라 빈손으로 갈수도 없어 간단한 선물꾸러미를 샀다. "친구에게
주기로 했는데"라는 말과함께 받은 재산세고지서는 5만원짜리였다.
영수증을 끊어주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저녁11시. 한건을 채우는데
5시간과 약1만원의 돈이 든 것이다. 이런식으로 김씨는 마감일인
6월말까지 25건의 성과를 올렸다.

매년 꼴찌를 독차지했던 그로서는 비교적 수준급이었다.

국민은행 이모차장(44). 그는 지난해 6월 잠을 설친 적이 많았다.
새벽시간에 가끔 초인종이 울려서였다. "재산세를 내실분은 언제든지
304호로 연락바랍니다"라는 벽보를 아파트입구에 붙여놨더니 바쁜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처음엔 실적만 올리면 잠을 설쳐도 좋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짜증이
났다. 그래서 7일만에 벽보를 떼어냈다고한다.

H은행 유모지점장(51)은 부인덕에 재산세유치에 대한 걱정을 덜고 산
사람으로 유명하다. 학교동창과 아파트주민들을 상대로 부인은 싫다는
내색없이 재산세를 잘도 거둬왔다. 그런 부인이 지난해엔 "못하겠다"고
발을 빼버렸다. 같은 동의 아파트에만 은행원이 3명 산다. 부인들끼리
서로 재산세를 가져가려고 하다가 말다툼이 일어났단다. "저희 주기로
약속한 걸 가져가시면 어떡해요"막내여동생같은 한은행원부인한테서 이런
소리를 듣고 부인은 자존심이 상해버린것이다.

이렇듯 재산세의 수납을 둘러싼 은행원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은행들이
수수료가 있는것도 아닌 재산세를 서로 유치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자를 주지않고 자금을 운용할수 있어서이다. 재산세납부기간은 매년
6월16~30일(건물분)과 10월16~31일(토지분)이다. 지방관청에서는 은행들이
거둔 재산세를 그다음달 16일에 가져간다. 최소한 보름간은 비용없이
대출이자를 남길수있다.

더욱이 재산세는 은행들이 관청대신 받는 각종 공과금중 덩치가 가장
크다. 지난해의 경우 두번에 걸친 재산세총액은 약1조4천억원. 올해는
1조6천억원에 달할것으로 추산되고있다.

그러다보니 재산세유치과정에서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은행원인
형제끼리 친척재산세를 놓고 "힘겨루기"도 한다. 의당 내야할 세금임에도
고지서를 주는 사람은 목에 잔뜩 힘을 준다. 액수가 큰 기업체들은
재산세를 주는대신 대출을 요구하기도한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은행감독원의 "강력한"지시로 은행들이 "공개적"으론
실적할당등을 할수없게됐다.

그러나 관청에서 재산세가 들어오는 즉시 돈을 가져가지 않는한
재산세유치경쟁이 사라질것으로 보는 은행원은 거의 없다.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은 이와관련,고발창구를 운영하는등
자존심회복차원에서 과당경쟁을 뿌리뽑겠다고 나섰다.

재산세는 어차피 은행에 들어오게돼있는데도 눈앞의 이익만을 따져
은행원을 공과금수납원으로 전락시키는것을 더이상 묵과할수 없다는
것이다.

자금확보를 위한 구조적인 노력없이 미봉책인 재산세수납경쟁만 반복하는
것은 은행산업의 낙후를 초래하는 한원인이라는
지적도있다(신상권중소기업은행노조부위원장).

뜨거운 날씨에 재산세를 받으러 다녀야하는 은행원. 그들의 요즘 소망은
한결같다. 재산세유치경쟁의 일화가 먼옛날의 전설로 남는것이다.

<하영춘기자> <이시리즈는 매주화요일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