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제지에대한 증권감독원의 조사및 감리결과는 기업의 공개와
부도발생과정에서 생각해볼수 있는 모든 부조리를 끌어모아놓은
불공정행위의 백화점 같은 모습이다.

공개후 첫상장이 이뤄진 날 대주주겸 사장인 유홍진씨가 시세를
조작,주가를 턱없이 높게 끌어올렸고 유사장과 또다른 대주주인
대신개발김융,심지어는 주거래은행인 전북은행까지도 기업내용및
부도처리에대한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미리 팔아 손실을 회피하는
내부자거래를 했다.

또 신정제지는 지난해 최소한 1백38억원에 달하는 적자규모를
14억원흑자로 만드는 엄청난 규모의 엉터리 회계처리를 했으며 외부감사를
맡았던 영화회계법인 역시 이를 묵인하거나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는
허수아비 역할만을 했다.

이같은 다양한 부조리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가장 충격을 주고있는 사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엉터리로 이뤄진 분식회계 문제로 이에대한 획기적인
개선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증권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시세조작이나 내부자거래역시 파렴치한 행위인 것은 틀림없지만
일반화됐다고 하기는 어려운 범법행위인반면 회계조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많은 기업에 만연돼있는 고질병이라는 것이다.

기업주가 마음만 먹고 또 외부감사를 맡은 공인회계사가 묵인만한다면
얼마나 엉터리인 재무제표가 작성될수 있나하는 점을 신정제지사건은 잘
보여주고있다.

증권감독원의 이번 조사가 관계장부의 미입수문제등으로 91년
재무제표만을 대상으로 이뤄졌지만 기업공개분석과 심사 대상이 됐던
89년이나 90년재무제표 역시 정상적으로 작성됐을 것으로 볼수는 없다.

어쨌든 신정제지는 91년중 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고 발표했었지만
현재까지 증권감독원이 밝혀낸 것만하더라도 최소한 1백3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있다.

자본금 92억원의 회사가 1년동안 무려 1백52억원의 분식결산을 한셈이다.

분식결산의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우선 직원과 유사장의 친척명의로 회사를 만들어 이회사가 발행한
융통어음을 실제 거래처로부터 받은 상업어음(진성어음)인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으로 21억8천만원을 과대계상했다.

이를위해 실제거래처의 명판과 도장을 위조해 사용하기도 했다.

또 인쇄소등 수요처의 명판과 도장을 위조,허위 증빙서류를 만들어
14억4천5백만원의 외상매출금을 엉터리로 재무제표에 계상했다.

원료구입을 위해 돈을 미리 주지도 않았으면서 24억1천4백만원의 선급금이
있는 것처럼 위장했고 텅빈 창고에 45억9천만원규모의 펄프원재료가 있는
것처럼 장부에 올려놓기도 했다.

더구나 비밀리에 은행 당좌거래계좌를 개설해 어음 수표를 발행하고도
이를 감추는등의 방법으로 최소한 46억원의 부외부채를 남기기도 했다.

외부감사를 맡았던 영화회계법인은 형식적인 재고조사와 받을어음의
실물실사생략,신정제지 직원이 만든 가짜외상매출금조회 확인서의
감사증거채택,어음 수표의 실물확인 소홀등 가장 기본적인 감사원칙조차
무시한 외부감사를했다.

결국 이번 일은 상장기업의 부도덕성과 공인회계사의 무책임한
업무자세,미흡한 제재조치등이 어울려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할수 있겠다.

기업들이 이처럼 분식결산에 열을 올리는데는 적자가나면 당장
은행대출부터 어려워지고 유상증자도 불가능해 자금줄이 막혀버리고마는
금융관행의 문제와 당기순이익만으로 기업내용을 속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일반인들의 사고방식,재무제표의 부실작성에대해 뚜렷한 처벌조항이 없는
법체계상의 문제점등이 주요요인으로 지적되고있다.

또 자유계약제로 되어있는 외부감사인의 수임체제및 감사시일이 불충분한
현실적인 문제점,공인회계사의 감사에대한 감시.감리활동 미흡,공인회계사
자질및 윤리성결여등도 큰 문제라는 것이 증권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외부감사를 맡은 공인회계사가 일을 맡긴 기업의 눈치를 보지않을수
없는것이 현실이고 또 기업결산기가 12월에 몰려있는 탓으로 1개사의
외부감사에 5 7일정도의 시간밖에 투입할수 없어 깊이있는 감사를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재무제표와 외부감사의 적법성여부를 가려낼수 있는 방법도 증권감독원의
감사보고서 감리뿐이며 그나마 일부회사에 대해서만 감리를 하는데다
감리기법및 실무경험 부족,인력문제등으로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증권감독원 관계자들도 솔직히 인정하고있다.

분식회계에대한 처벌 역시 현재는 증권관리위원회의 임원해임 권고가 가장
무거운 벌에 속해 유명무실한 형편이다.

엉터리 재무제표의 작성은 공인회계사가 자신의 역할만 제대로하면 상당히
줄어들수 있다는 것이 증권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얘기이다. 지난연초
부도기업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몇몇 공인회계사가 구속된후 부실감사
사례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 감사보고서 감리를 맡고있는 증권감독원의
분석이다.

박정규 증권감독원 외부감사심의위원보는 "기업회계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감사보고서 감리기능의 강화와 부실회계처리를한 경영자의
처벌확대,투자자를 비롯한 일반인들의 재무제표에대한 관심제고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현재 개정이 추진되고있는 "주식회사 외부감사에관한
법률"에 이를 반영하는 것은 물론 증권감독원도 감리활동의 강화책을 적극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이번의 신정제지사건을 계기로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확보할수 있는
근본적인 종합대책이 마련되어야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있다.

<조태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