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여기가 어디냐…누가 나를 기소했느냐"
“롯데그룹 사건은 전형적인 총수 일가의 회사 자금 빼먹기이자 이권취득형 범죄다.” (검찰)

“롯데는 내가 만들고,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도대체 누가 나를 심판하겠다는 건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대로(大怒)’했다. 20일 열린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비리 의혹에 대한 첫 공판에서다. 이날 재판에는 신 총괄회장뿐 아니라 총수 일가가 모두 법정에 섰다. 신동빈 롯데 회장을 비롯해 그의 형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이복누나인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서미경 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총수 일가가 재판에 총출동한 것은 롯데그룹이 최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 재판은 이날 오후 2시 정각에 열렸다. 고령에 거동이 불편한 신 총괄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도착했다. 검찰의 공소 사실 요지 설명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신 총괄회장은 재판장이 기본 인적사항 등을 확인하는 인정 신문을 진행하자 “이게 무슨 자리냐”고 물었다. 재판부와 변호인이 “(급여 지급 등으로) 회삿돈을 횡령한 것에 대한 재판을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지만 질문은 계속됐다. 재판 진행 중에도 옆자리에 앉은 신 회장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신 회장은 아버지에게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듯 일본어로 대답했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듯 종이에 글을 써서 보이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재판장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 거냐”고 묻자 신 회장은 “아버지가 ‘여기는 어딘가. 누가 나를 기소했나. 내가 만든 회사인데 왜 재판하는 건가’라고 물으신다”고 답했다. 신 총괄회장 측이 공소 사실을 부인하는 의견을 모두 밝히자 재판장은 신 총괄회장 측에 “사건을 분리하겠다”며 “퇴정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신 총괄회장은 직원들이 휠체어를 밀며 법정 밖으로 나가려 하자 “할 말이 있다”며 다시 돌아왔다. 신 총괄회장과 대화를 나눈 변호인은 재판부를 향해 “이 회사는 내가 100% 가진 회사다. 내가 만든 회사고, 100% 주식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나를 기소할 수 있느냐. 누가 나를 기소했느냐”라는 그의 말을 대신 전했다.

신 총괄회장은 변호인에게 “책임자가 누구냐. 나를 이렇게 법정에 세운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는 등 상당히 흥분한 모습이었다. 출석 30분 만에 먼저 자리를 떠나는 순간 서씨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신 회장과 신 전 이사장 등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 회장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고개를 숙였다.

신 회장의 변호인은 “가족 급여 지급 문제 등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적으로 신 총괄회장의 의지대로 진행한 일”이라며 “이에 관해 신 회장은 아버지와 상의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신 회장 측은 부실화한 롯데 피에스넷 유상증자로 인해 다른 계열사들에 471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도 부인했다. 신 회장의 변호인은 “롯데가 피에스넷을 인수한 것은 인터넷은행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