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예측불허 독재자와 마주한 현실
미국 정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스위스에 유학하던 10대 시절의 행적을 비밀리에 추적한 적이 있다. 김정은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커트 캠벨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2013년 12월 CNN에 출연해 “김정은의 유학시절 반 친구와 주변인 거의 모두를 인터뷰했다”며 “위험하고 예측불허하며 폭력에 기울기 쉬운 과대망상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이 평가가 정확하다면 핵무장 국가인 북한과 외부세계에 대한 위협, 2500만명의 북한 국민 운명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폭력적인 과대망상형"

3년여가 지난 현재 이런 평가가 정확하다는 게 입증되고 있다.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속사포처럼 진행해 왔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정권을 잡은 김정은은 지금까지 미사일 개발 실험을 40여차례 했다. 김정일이 집권 17년간 한 실험의 두 배가 넘는다. 김정일은 집권 기간 두 차례의 핵 실험을 했으나 김정은은 세 차례나 했다. 갈수록 도발 주기가 짧아지고 있으며 그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혈맹’ 중국의 눈치도 보지 않는 듯하다.

공포정치는 권력 유지의 한 수단이다. 외국을 떠돌던 이복형 김정남 피살은 김정은 지시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우리 당국의 판단이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것을 비롯해 광기 어린 숙청이 이어지고 있다. 현영철, 이영호,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김정은을 떠받쳤던 측근들이 ‘토사구팽’됐다. 당국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된 고위 간부는 2013년 30여명, 2014년 40여명, 2015년 60여명, 2016년 140여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유일체제 구축을 위해선 피붙이도 제물로 바치는 게 김정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중에 ‘보란 듯이’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완성단계에 와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를 탄두에 장착하고 미국까지 실어 보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일부만 보완하면 곧 실전 배치 단계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안보 위중한데 안이한 잠룡들

공포정치는 ‘양날의 칼’이다. 유일체제를 뒷받침하는 수단이지만 권력층 내부에서 불안과 동요를 일으키며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공포정치에 의존한 독재자들의 말로는 한결같이 비참했다. 김정은 체제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무너질지 모를 일이다.

이 예측불허의 독재자가 무시무시한 핵미사일 버튼을 쥐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33세 광기의 독재자가 우리 머리 위에 앉아 한반도의 운명을 틀어쥐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은 모험주의적 도발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는 북한 정권붕괴론, 선제타격론이 등장했다. 한반도 안보가 중대 기로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대선주자들의 대응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 자금 원천이 되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즉각 재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또는 연기, 군 복무 단축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안보를 표로 계산하는 식의 대응으로는 김정은과 마주하는 현실이 암담할 수밖에 없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